대구영화학교 5기 수료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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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영화학교 5기 수료작 리뷰

글: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3년도 대구영화학교 5기 수료 작품 4편에 대한 개괄 논평을 위해서는 영화학교의 존폐 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24년도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었지만 끝내 영화학교 운영재원원천이던 지역영화 활성화지원사업항목은 부활하지 못했다.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는 게 정답에 가까울 테다. 국회를 통과한 6569천억 중 불과 8억 예산은 끝내 없었고 몇몇 지역에서 빠듯하게 꾸려오던 영화학교는 각자도생 운명에 처했다. 대구영화학교 6기 개설이 불투명한 가운데 맞이하게 된 4편의 단편은 개별 작업 완성도와 별개로 언급될 가치가 충분하다.

 

불과 5년의 시간이지만 지역 독립영화판은 대구영화학교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만큼 급변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워낙 몇 안 되기에 공동작업 아니면 개별 창작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에서 를 창출하는 몇 명의 창작자가 존재했다면, 매년 12명 신예가 배출되면서 출발부터 협업에 기반을 둔 창작 집단이 탄생했다. 대구영화학교 인력양성 기본 틀인 ‘31(연출+제작+촬영)’ 체제부터 의도한 것으로 봐야할 테다. 거기에 이제 첫 영화를 만들어야 할 신입을 위해 대부분 영화학교 동기 및 선배층이 참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창작세대 형성 특징이 확정된다. 지리적 근접성을 뛰어넘는 기획과 구상이다.

 

5기 졸업 작품은 이전 기수들과 다른 결로 다가온다. ‘도제처럼 선배들의 촬영현장에 결합했던 유경험자 중심 1-2- 코로나19 아래 여러 제약을 공유하며 친밀해진 3-4기와 다른 배경을 지닌 기수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더 주목할 지점은 창작 경향의 변별력이다. 물론 예전 기수 경향과 정반대로 치닫는 건 아니다. 인위적 개입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상이한 결이 포착되는 게 더 흥미롭다. 흔히 대구독립영화라면 공히 떠올리던 어떤 질감이 있다. 한 줄로 개념화하는 건 억지겠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엇인가 느껴진다는 건 적지 않은 이들이 동의해온 지점이다. 개인을 둘러싼 외부환경(사회)에 대한 고찰과 이를 군더더기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 같은 특정한 결이 그것이다. 이 색채가 조금씩 옅어지는 건 기존 창작자 그룹과 연결고리가 감소하는 후대로 접어들수록 필연이지만 5기의 경우 직전 기수들과도 확연히 대비되는 편이다.

 

일단 초심자들의 첫 영화가 형식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건 당연하다. 오히려 반대 상황이라면 의외거나 도리어 불안해질 테다. 그래서 기술적 측면은 굳이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신경이 쓰인 부분은 대다수 작업이 2020년대 들어 영화 뿐 아니라 청년세대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자기연민에 상당부분 경도되어 있다는 점이다. 5기생 상당수 작품이 자기 문제에서 출발해 자기 문제로 끝난다. 줄거리 내내 (과거 혹은 현재의) 자기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데 영화가 영상 일기장처럼 활용되는 지점이 관측된다. 타인 혹은 세계에 대한 시야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 중심인 형태는 현재 한국독립영화 전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결국 대구독립영화가 그 자장 안에서 흥미로운 변주를 보여주긴 했지만 대안적 전망을 수립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결과론을 입증하는 셈이다(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이번 졸업영화는 (개별 작품 편차와 별개로) 전국적인 창작경향과 전반적으로 닮은꼴이다. 그만큼 대구영화라는 변별력은 줄어든 셈이다. 물론 영화학교 출신들은 대개 차기작에서 가능성을 분연히 입증해왔으니, 그들의 다음 작업을 기다리며 응원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나쁜 소녀는>


어두웠던 화면이 밝아온다. 뿌옇게 김이 서린 목욕탕. 거울에는 아무도 비치지 않는다. 장면이 전환되면 대학 기숙사 2인실이다. 소설을 읽던 여학생이 룸메이트에게 그 내용을 들려준다. 북반구의 특징인 백야가 돌아오면 도벽이 발동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사연을 듣는 룸메이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룸메이트의 친구라 하지만 지수는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방문객 세현은 요즘 기숙사 공용 목욕탕에서 부쩍 잦아진 절도사건을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야길 듣는 재림은 그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한참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지수는 세현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간다. 둘 사이에 불편한 이야기가 오간다. 재림은 얼마 후 도서관에서 지수의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워하지만 곧 뭔가가 어긋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의혹은 둘이 함께 세현과 마주치면서 확인되기에 이른다. 지수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나쁜 소녀는>고백록의 형태를 취한다. 도입부 룸메이트 간 대화의 화제, ‘백야가 되면 도벽충동을 겪는 (소설의) 주인공 vs 말 못할 비밀에서 기인된 불안으로 도벽을 느끼는 (영화의) 주인공 사연이 교차되는 전개다. 도벽이라 하지만 금전적 이익을 노릴 정도가 아닌 경미한 피해규모를 감안하면 이 이야기가 도벽사건 해결이 아니라 그 충동의 근원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지수는 어쩌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영화는 객관적 진실게임보다는 두 룸메이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이미지로 묘사하는데 전력을 쏟는다.

 

초반 대화에서 지수재림에게 말한다. 이 기숙사는 백야와 닮아 있다고. 해가 지지 않는 북극의 겨울과 동거인 및 CCTV가 들어찬 기숙사는 누군가에겐 숨 막히는 감옥처럼 다가올 테다.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지수자기만의 방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다름때문에 그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찰나의 정신적 도피를 위한 충동 때문에 또 다른 족쇄에 얽매인 채 살아야 했다. 그 후과는 지금 현재도 지수를 괴롭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수는 번민한다. 멀리 달아나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걸 공개하는 승부수를 던져 마음 속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는 룸메이트 재림이 잠든 밤에 수백 수천 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테다. 고심 끝에 지수는 결단한다. 둘은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아 서로를 똑바로 응시한다. 욕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면하던 것처럼, 지수는 마침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재림과 마주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이 기대했을법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는 없다. 지수는 재림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치부를 밝힌다. 하지만 그는 도벽에 대해선 자수했지만 그 행위를 잉태한 근본에 대해선 도저히 고백할 수 없다. 그 단계에 도달하기란 지수 뿐 아니라 누구나 힘든 법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수는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점에는 서게 된 셈이다. 거짓말이 다음 거짓말을 낳고, 사방을 에워싼 감시의 눈(거울-CCTV-타인)에 질식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위기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소수만의 의외적인 문제일 리 없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지수’()의 용기를 응원하며, 그들 곁에 또 다른 재림이 함께 하기를 소망하는 이들의 염원이 한가득 구현된 작업이다.

 



<내 공 내놔!>


유년시절에 누구라도 한번쯤 가졌을 법한 순간을 영화는 마치 한 움큼 삽으로 떠서 고스란히 병에 담아둔 것처럼 재연한다. 세 명의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공을 차며 놀던 중, 주차된 자동차 아래에 딱 절묘하게 공이 걸리고 만다. 아무리 용을 써도 꺼내지 못하던 참에 지나가던 중학생 둘이 도와준다. 꺼내고 보니 값나가는 공인구. 공을 보고 경탄하던 중학생들은 꺼내 줬으니 잠깐 차보겠다고 한다. 마지못해 승낙한 아이들, 하지만 뻥 차올린 공은 담장 너머로 가버리고 중학생들은 줄행랑을 친다. 세 아이는 공을 찾으러 가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은 공의 행방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어떻게든 공을 찾기 위해 궁리하지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일상에서 벗어난 여정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정겹긴 하지만 크게 흥미로울 것 없어 뵈던 이야기는 구조상으론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한동안 추억으로 담아둘 뿐 이내 잊어버리고 말 그런 에피소드다. 축구공을 찾는 여정이 중심축이긴 하지만 공을 찾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정도의 절실함이다. 중요한 건 유년기의 끝이 아직 이 아이들에게 다가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보이는 우정과 조화로움에 있다. 세 아이는 체구도 외모도 제각각이다. 덩치와 홀쭉이 구성은 고대 광대극부터 쭉 이어지는 전형이지만 여기에 요즘 한국사회 화두 중 하나인 다문화사회색채가 입혀지는 게 이채로운 구석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나이를 먹거나, 주변 어른들의 편견에 물든다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우애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제작진은 평범해 보이는 구성에 숨겨둔 보물처럼 어느 틈에 우리 주변에 스며든 사회적 변화의 징후를 새긴다. 그들의 모험 길을 (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으로 설정한) 대구염색공단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낸다.

 

부모 세대나 지금 세대나 기억을 소환하면 어색하지 않게 어디에도 섞여들 법한 민우유빈에 이국적 외모를 한 현다가 어우러지는 순간, 이 영화는 독창적 변주로 거듭나게 된다. 공의 주인인 현다는 큰맘 먹고 공인구를 선물해준 아빠가 공장 일로 너무 바빠 얼굴 볼 틈도 없다. 그런 아이에게 축구공은 비싼 가격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아직 온전한 감각은 아니지만 곧 눈뜨게 될 이성에 대한 끌림의 흔적까지 더해졌으니 세 친구의 여정은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는 목숨 건 모험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공을 슬쩍 하려는 중학생들은 정의의 용사들이 마주칠법한 외눈박이 괴물이나 마왕 같은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악당들에게 이 용사들은 필요 이상의 원한이나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곧 사라지고 말 유년기의 순수가 아직 그들에게 건재하기 때문이다.

 

제법 장대했던 모험의 끝은 만찬과 휴식으로 귀결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고전 모험담의 전형적 구조에 약간의 변주를 가미해 소소하게 마무리된다. 공단지대를 배경으로 다문화 청소년들의 이상화된 우정을 구현하는 영화는 심심한 편이긴 하지만, 살짝 웃음을 머금고 관객들이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흩날린다. 미성년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내내 카메라를 의식한다거나 국어책 읽는 것처럼 대사 처리를 하는 한계점도 그저 씩 웃고 넘어가게 만드는 천진함이 충만한 작업이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한 편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이 영화감독 지망생 민지의 만 하루 동안 진행된다. 몇 주째 동료들과의 촬영일정을 지연시켜가며 민지는 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나리오에 매달리는 중이다. 가방엔 (‘임무를 상기하기 위한) 노트북과 메모지가 늘 함께 하지만 이야기의 실마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탄탈로스에게 내려진 형벌처럼 번번이 놓치고 만다. 동료들의 신뢰를 잃으면 곤란한 바닥인지라 그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민지는 반은 정신적 도피, 나머지 절반은 아이디어 수집 차원에서 두 명의 전 남자친구와 차례로 만난다. 무작정 찾아가 같이 자기도 하고, 시나리오 조언을 핑계로 모텔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런 불안한 심경이 그가 쓰려는 시나리오 설정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어찌어찌 써내려가는 시나리오가 과연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인지 민지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야기는 두 가지 결론을 상호 교차해가며 완성하고픈 욕망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는 이제 단 하루 만에 끝내야 하는 새 영화 시나리오, 두 번째이자 궁극적 목표는 주인공의 갈지자 행보의 끝이다. 극중극 구조를 도입해 과감하게 민지의 시나리오 창작과 그 자신의 방황을 매치시킨다. 근사한 조합이지만 조금만 박자가 어긋나면 배가 산으로 가기 딱 좋은 구성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제작진은 자신들과 하는 동 세대적 속성을 짙게 드러내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진 듯하다. 제작진의 자전적 체험에 기반을 둔 전개에 미래의 관객들이 공감해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대들 개성의 표출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나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으로 대표되는 오토픽션과 연계해 들여다볼 구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는 닮은꼴이되, <연인>에서 주인공 커플의 숨 막히는 에로티시즘 묘사를 통해 제국주의-식민지 구도를 전복시키려던 도전, 아니 에르노의 작업들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성/계급 차별로부터 파생된 심리적 억압의 구현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제작진의 경험 치로 봐선 어쩔 수 없는 한계다. 하지만 앞선 대가들의 사적 소설’(과 그 영상화)의 비교는 굳이 본 작품 외에도 현재 한국독립영화의 사적 경향전반이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뭔가를 후련하게 해내고 싶지만 아직 방향과 좌표를 온전히 설정하지 못한 청년세대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것 같은 주인공 민지의 하루 동안 시간은 응축된 덩어리를 토하려는 시도의 연속이다. 상징적인 장면들이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은유하듯 연이어 등장한다. 카페 야외 흡연 장면에선 실험적 묘사가 도드라진다. 타인과 나의 연결고리 혹은 타임워프를 구현하는 해당 장면 연출을 통해 제작진은 민지가 겪는 일련의 상황이 찰나의 개별적인 경험에 그치는 게 아닌, 한 인간의 성장담 혹은 세대 차원의 공통체험으로 승화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욕적인 시도에 비해 아직은 좀 더 정돈되어야 할 경험 치와 테크닉 탓에 기대만큼 성취에 도달하진 못했을지언정, 이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 또한 작은 재미일 테다. 온전히 원했던 비전을 구현하는 데 미흡하더라도 고심을 거듭한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사적 소설의 시각화 측면에서 이 영화는 하나의 세대적 반영 기록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좌충우돌 방황이 에너지 낭비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결실을 맺는 마무리의 감흥은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이 영화가 관객과 만날 때의 반응이 궁금한 이유로 작용한다.




<잡으러 가자>


20236, 경북 영주의 하천에서 악어를 봤다는 목격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반년 넘게 지난 지금 시점에선 다른 동물을 잘못 본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시엔 지구온난화로 인해 외래종이 지역 생태계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다. 아마 이 영화 역시 해당 사건을 주목해 이야기 축으로 삼았을 테다. 악어가 등장하기에 어떤 이들은 <앨리게이터> 같은 괴수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아쉽게도 이 저예산 단편은 그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맥거핀효과로만 활용되는 검정 카이만 악어의 존재감은 전혀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의 악어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1865년 단편소설 악어와는 다른 각도이긴 하지만 사회적 주제를 펼치는데 기능적 역할을 담당한다. 고전의 반열에 든 대작가의 단편이 신랄한 기득권층 비판에 집중된다면, 본 작품에서는 그런 첨예한 계급갈등보다는 청춘 로맨스 장르에서 질투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자 일확천금의 유혹으로 설정된다. ‘악어라는 환상적 존재의 활용법 관련 흥미로운 비교대상이다.

 

소양충현은 제법 오래된 커플이다. 30 전후가 되었으니 둘의 연애는 초반의 콩깍지 대신 현실에 직면한 지 오래다. 6주년 기념 조촐한 이벤트 중간에 둘은 또 한판 격돌한다. 충현은 생활고는 고려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소양은 지금 우리 형편이 어떤지 아냐며 급 발진한다. 생활력 강한 소양이 많은 부분 책임져온 동거생활이 낳은 감정싸움이다. 한두 번이 아닌 듯 보이지만 이번엔 심상찮다. 그 와중에 충현의 휴대전화가 긴급하게 울린다. 일터인 펫샵에서 그가 돌보던 악어가 탈출했다는 것이다. 과실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업주는 충현의 책임이라며 배상금을 물린다. 게다가 소양과 파국을 맞이할 위기에서 파트너가 대출받은 전세보증금 몫도 해결해야 한다. 충현은 탈출한 나비포획 포상금 1천만 원을 위해 만사 팽개치고 수색작업에 나선다. 연인이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진 소양의 퇴근 후 발걸음도 천변으로 향한다.

 

대개 자전적 경험, 심하게 표현하면 일기장의 시각화에 그치고 마는 숱한 단편 작업에 비해 본 작품은 자기 세대의 요지경을 거대한 벽화로 그려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현 세태를 적극적으로 배경 삼아 자신들의 세대가 직면한 현실과 그에 대한 응전을 선보인다. 곰곰이 뜯어보면 이것저것 공들인 구석이 영화 내내 쏟아진다. 두 연인이 함께 생활하는 전세집 벽면을 장식한 6년간의 사진을 통해 주인공들의 前史를 구구절절 설명 없이 파악하게 만드는 도입부부터 서로 대응하는 형태로 조합된 [상황]:[배경]이 쿵-탁 쿵-탁 보조를 맞추듯 흐르는 순간들이 목격된다. 어떤 이에겐 공들인 주변 배경과 장치가 맛깔날 테고, 누군가에겐 세세한 소품까지 오히려 튀게여겨질 정도로 과잉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첫 영화 완성을 위해 주변 세간 살이 다 끄집어내 동원하는 풍경이 절로 떠오른다.

 

온갖 사회적 제약에 시달리며 이제는 막연히 청춘의 패기만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에 봉착한 주인공들이지만 제작진은 로맨스/멜로 장르를 포기하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는 소양과 충현의 관계는 그저 슬랩스틱에 그치지 않고 관객 각자가 겪을법한 현실의 고충과 겹쳐져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크게 모자람이 없다. 사랑만으로 그들을 둘러싼 불안을 극복하긴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순 없지 않은가. 제목이 불러오는 호기심이 과연 무엇을 생포하는 결말로 확인될지 끝까지 큰 궤도 이탈 없이 몰입시키는 추진력이 돋보인다. 마지막 결말의 정제된 이미지는 코믹함 속에 짠한 여운을 의도한다. ‘의지주의로의 귀결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이도 있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의지보다 더 중요할 게 뭐가 있으랴.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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