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① <구두수선>, <국가유공자>, <대리운전>, <르네 데카르트>,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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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수선> 리뷰

문채영


 

 

 추억은 거창한 기념품보다 일상적인 물건으로부터 더 많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집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기억을 공유한 가족의 부재는 더욱 괴롭다. 가족의 흔적이 집 안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 또한 그렇다. 아직 상복을 벗지도 못한 미래의 마음같이 숨이 턱 막힐 듯 신발장을 가득 채운 엄마의 수많은 구두들. 미래는 호기롭게 쓰레기봉투에 담아 가지고 나가지만 이내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 하고 눈물을 흘린다. 한 달 후, 남자친구는 누나의 결혼식에 함께 가자고 권유한다. 미래는 결혼식에 적당한 의상을 찾던 중, 아직 신발장에 있는 엄마의 초록색 구두를 발견한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구두를 수선해달라는 부탁을 미래는 이제야 들어준다. 어두운 신발장 속에 있다가 수선된 초록색 구두는 미래가 신었을 때, 비로소 생명을 되찾는다.

 <구두수선>의 서사에서 가장 큰 두 사건은 가족의 죽음인 모친상과 가족의 탄생인 결혼식이지만 두 사건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상을 막 끝마친 후, 그리고 결혼식에 가기 직전까지만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두 사건 사이를 구두가 이어준다. 초록색 구두가 상징하는 바는 명료한데, 초록색은 식물의 색으로 생명과 재생,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색이다. 영화의 초반, 미래가 아직 엄마의 죽음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래의 시점샷으로 보이는 신발장의 내부를 보면 초록색 구두는 화면의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 아래 가장자리에 걸쳐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초록색 구두는 영화의 중반,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엄마와의 추억도 회상을 하고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후에야 등장한다. 미래의 상처의 회복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구두를 수선하는 행위는 곧 치유의 과정을 뜻하며, 미래가 그 초록색 구두를 신음으로써 엄마의 죽음과 추억을 삶의 일부로 포용하며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종류의 이별을 겪는다. 이별을 포용하고 미래를 향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성장할 테다.



<국가유공자> 리뷰

조은별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가족들의 만류에도 혼자 살던 집으로 돌아온 영춘. 세탁소에 맡겨 둔 정장을 찾아 그 위에 금빛 훈장을 조심스레 달며 영정사진을 준비한다. 영춘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다. 오랜 세월을 국가유공자로 살아온 그의 죽기 전 마지막 남은 바람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묘지 호국원에 안장되는 것. 늙고 병든 몸으로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신의 명예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하지만 영춘에게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국가는 그의 병영 생활에 불명예스러운 문제가 있었다며 호국원 안장을 거부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영춘은 소송해서라도 명예를 되찾고 싶다. 그러나 그의 둘째 아들 정대는 그런 그의 모습이 답답하고 지겹다. 농촌에서 일용직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 딸의 유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정대의 눈에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쓰려는 아버지 모습이 버겁다.

 세대 갈등은 오래된 사회현상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 간에 차이와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 <국가유공자>는 내세울 거라곤 국가를 위해 공을 세웠다는 자랑스러움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 영춘과 국가나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둘째 아들 정대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 가기 위해 국가를 떠나는 손녀 다윤으로 이루어진 삼대 가족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 세대의 갈등과 이해를 담았다. 길지 않은 시간으로 담아낸 단편영화지만 죽음을 앞둔 국가유공자 영춘의 시간을 들여다보면서 좁게는 가족, 넓게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세대들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한다.

 죽어서 묻힐 선산이 있음에도 죽어서도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식과 손녀에게 끝까지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 남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는 영춘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 장노년 세대의 존엄함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외면하고 뒤늦은 후회로 힘들어하는 정대의 모습은 우리네 모습이 아닐까 하는 씁쓸함이 몰려온다. 각 세대의 이야기를 짊어진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와 한 가족의 삶을 그린 사실적인 풍경은 영화에 힘을 더한다. 



<대리운전> 리뷰

김인혜



 

 연극 무대 위에 선 강민이 햄릿의 독백을 읊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강민은 연극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저녁에는 대리운전으로 생활을 유지한다. 졸음을 이기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태우고 운전하는 동안 배역의 대사를 속으로 되뇐다. 늦은 귀가에 전화로 싸우는 이의 통화를 고스란히 듣기도 하고, 대리운전비를 줄 현금이 없다는 이의 집 앞까지 동행하기도 하며 밤의 시간을 견딘다. 결국 연습 중인 작품의 연출에게 연기를 그만하겠다고 말하지만, 버티는게 살아남는 일이라며 강민을 붙잡는다. 여러차례 걸려오는 연출의 전화를 강민은 받지 않는다.

 평소처럼 대리운전을 하러 간 곳에서 첫사랑 지희를 마주하게 되고, 지희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연인 자성과 함께다. 운전대를 잡고 잠시 졸게 되고, 강민의 꿈속은 언제나 무대 위다. 강민의 짧은 꿈은 차가운 길 위 경적소리에 화들짝 현실로 돌아온다. 졸음운전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호통을 치는 자성에 용서를 구하고, 지희가 말려 겨우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직업에 귀천이 어딨냐던 자성은 운행 중에 강민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이 강민의 경우에는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것처럼 졸음(꿈)과 운전(현실)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배우로 살아가는 일이, 잠시 조는 사이에나 눈앞에 펼쳐지는 꿈처럼 잡히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강민의 상황을 은유하듯 시종일관 어둡다. 꿈의 공간인 소극장도, 일터인 대리운전 시간인 밤도. 연습 무대에서는 조명이 켜지지 않고, 밤길은 겨우 밝힌 가로등과 헤드라이트에 의지한다. 이 어둠을 깨뜨리는 것은 지희다. 내내 자성의 화를 누그러뜨리다 결국 무례한 행동을 하는 자성에게 일침을 날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지희의 행동이 연대가 되어 강민이 가진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지금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응원. 내내 강민을 한발짝 떨어져 지켜보던 화면이 혼자 짊어졌던 무게로 국한되어 있었다면,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로 한순간 확장된다. 일상에서 벌어진 작은 이벤트와 관계 속에서 지지 받는 경험만으로 어둠은 깨어지고, 일상의 경험이 등불이 되어 이 밤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어떤 무례로 누군가의 삶이 납작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지지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또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꾸는 많은 강민이들이 자신의 꿈을 지켜나가기를 응원해본다.

 영화를 연출하고 직접 강민 배역을 연기한 이재남 배우(감독)는 대구에서 다방면의 배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이기에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르네 데카르트> 리뷰

금동현




 말에는 무게가 있다. 무게를 느끼기는 쉽다. 한 번 같은 말을 이렇게 고쳐보자. 언표에는 중량이 있다. 나는 후자가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말과 무게는 일상에서 사용하지만, 언표나 중량은 개념어니깐. 동일한 의미를 공유함에도 후자는 무언가 무겁다. 누군가 평소에 말을 언표로 무게를 중량으로 고쳐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좀 지겨울 것 같다. 물론 무거운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개념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가 있고, 문제가 복잡할수록 구체적인 개념어가 필요하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창문과 바퀴는 쉽게 말하고 들리지만, 캠 포지션 센서라던가 스로틀 포지션 센서 같은(방금 검색해봄) 것은 생경하고 무겁지만 필요한 부품인 것처럼. 취향 판단의 보편적 원리 따위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나는 인식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정확한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성우 감독의 〈데카르트〉는 무척 아쉬웠다. 왜냐하면 〈데카르트〉가 표현하는 세계가 굳이 르네 데카르트처럼, 일반에게 너무 정말 무겁고 내포가 가득한 이름을 빌려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실 진실의 확정 불가능성이라는 주제는 영화사에서 너무 많이 제기되었다. 〈데카르트〉가 친절을 베풀어 영화의 가장 처음에 띄워주는 격언 “첫째 기존의 선례와 관습을 모두 의심하라. 둘째 불확실한 모든 것을 의심하라 – 르네 데카르트 〈방법적 회의〉 中”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아이덴티티〉나 〈셔터 아일랜드〉 같은 대중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굳이 르네 데카르트와 방법적 회의를 끌고 오고, 󰡔방법서설󰡕 같은 철학책을 끌고 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초점을 인물에게만 맞춰 장소를 날려버린다던지(방법적 회의의 시각화) 병원에서 B동 환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숏(주인공)-역숏(주인공+B동 환자)으로, 대화 상황을 주인공의 몽상으로 볼 분위기를 남기는 것은 꽤 재밌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너무 분명한 게 아닌가, 마치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관습화되거나 너무 많이 닳아버린 방식으로) 제 4의 벽을 깬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방법적 회의를 “지금 의심을 하고 있네?”라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니깐, 거기에는 매우 소박하고, 언제나 새롭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맥락에서 〈데카르트〉는 얼마나 새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배웅> 리뷰

안태현




 서인, ‘너’가 집으로 떠나려는 전날 밤 우린 파란 벽지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젠가 놀이를 했다. 그렇게 찾아도 없는 파란 후드티는 맨 끝 사물함에 있고, 조촐히 끓인 라면을 안주 삼아 파란 맥주를 마실 때 오가는 말이란 없다. 준영. ‘나’는 부재하는 너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줄곧 남이 된다는 허무함을 느껴왔다. 아버지 상을 치른다고 떠난 너에게 나의 연락이 닿지 않게 되면, 내가 느끼게 될 허무함의 다음을 너는 알까. 알고는 싶을까.

 불가역적 요소로서 ‘이놈의 코로나’를 안고 가려는 영화는 역시 폐업을 면치 못한 게스트하우스를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해오던 준영과 서인 역시 폐업과 동시에 젊은 날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토록 어찔하고도 아득한 두려움을 그리려 헤아릴 경황 없어 드리우는 검은 침묵과 무심코 내비치는 사념의 언어를 서인에게서 끌어낸다. 그리고 준영의 대사 석 줄로 하여금 그런 서인에게서 촉발된 심정을 넌지시 던져본다.

 ‘네 말이 뭔지 듣고 싶었어.’ ‘왜 아무 말도 안 해?’ ‘말해줄 수 있었잖아.’

 도시를 살아가려는 젊음은 ‘돈 벌어야지’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되뇌며 마땅한 방도와 이렇다 할 열망 없이 자신을 재촉한다. 서인의 그 말로 인해 비로소 관계의 층위가 야속하게 떠오르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단순히 여행이라 생각하고 마는 사람과 그 이상의 것을 꿈꾸던 사람 간에 육중한 담을 친다. 그 몽상가는 파란 목도리를 기꺼이 벗어 자신은 괜찮다며 떠나려는 여행객의 차고도 슬퍼질 가슴에 포개어준다.

 배웅은, 행하는 방식으로서 가장 흡족한 이별의 모습이다. 전날 밤 무너짐을 전제로 한 너와 나의 안타까운 게임을 다시 쌓아 올리는 대신, 나는 상자에 다시 담기로 했다. 그 게임은 상자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언제고 기다릴 것이며, 또 나는 그 새로운 누구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배웅할 수 있었다. 조금은 아픈 작별과 함께, 너를.

 영화는 서인과 준영, 그 누구도 없는 게스트하우스의 텅 빈 풍경을 마지막 장면으로 택한다. 그 적막함은 마치 준영의 슬픈 다짐이, 기억만을 남겨둔 채 경유한 모두의 흔적은 지워내야 하는 공간의 오래된 숙명과 공명하며 일으킨 심상으로 다가왔다.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네트워크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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