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현
왜행성은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퇴기 전까지는 없었던 종류의 천체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공전 궤도를 가지고 스스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중력과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의 다른 천체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힘을 가지지 못한 행성. 극의 주인공인 태양은 그 이름과 다르게 왜행성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는 학원 선생님의 관심과 호의를 받는 등, 사람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그런 캐릭터다.
얼핏 보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지 않아, 주인공의 태도와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왜행성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라지겠다는 것이 아닌, ‘소행성’ 으로 남겠다는 것이 아닌 무언가로 다시 살아갈 의지와 결연이 보였다면 너무 낙관적인 감상일까. 모호하고 흐릿한 은유 속에서 찾아낸 작은 에너지가 결연하게 남아 있다.
김건우
우리는 ‘탈모’라는 것이 하나의 ‘밈’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즈음 나오는 한국, 혹은 다른 나라의 창작물에서 탈모라는 특성은 코미디적 소재의 일종으로 계속해서 소모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것을 주 소재로 삼은 영화는 잘 없어 보인다. 그 가운데, 이한오 감독의 <헤어 나올 수 없는>은 이 탈모라는 소재가 가진 특성을 잘 이용하여 흥미로운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헤어 나올 수 없는>의 ‘탈모’는 주인공의 가장 주요한 특성이고, 영화의 코미디적 에너지를 이끄는 주 소재이자, 주제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메타포 중 하나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은 주인공 영모로 대표되는 탈모인의 주된 애환과 갈등을 유쾌하게 담아내면서도 우리 개개인이 가진 어떤 콤플렉스를 건드린다. 소위 ‘탈모 드립’이라고 불릴 수 있는 영리한 유머로 가득 찬 전반부를 지나고 나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나름의 결함을 가진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함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헤어 나올 수 없는>은 ‘탈모’라는 요소를 좀 더 영화적으로 변용하기 위한 시도이자,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에 관한 따뜻한 시선을 전하려 하는 노력이다.
임아현
계절이 변한다. 자연이 이치가 그러하듯이 사람을 둘러싼 상황도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미묘한 시기를 지나가는 두 사람, 윤재와 민서가 있다. 전학을 앞둔 윤재는 남은 시간을 민서와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다. 잠깐 나눈 대화의 끝에서도 서로의 흔적을 은근하게 좇지만, 태도에는 망설임이 앞선다. 쉬운 것은 어렵게, 어려운 것은 더 어렵게 풀어내던 어떤 시절의 마음이 떠오른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배우고 함께 시도했던 친구들. 어느 순간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었지만, 극 중 윤재의 모습처럼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그 때의 나는 어땠나? 향수어린 바닷가의 풍경에 더해 왠지 그리운 감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기억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려한다.
솔직하고 순수하지만, 모호하고 서툴렀던 그 때를 매력적으로 불러오는 기술이 있다.
임아현
감정원 감독, 서민기 음악감독의 협업으로 탄생한 금호강 아트 필름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 는 실험영화 장르의 영화다. 금호강의 생태계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작업을 영상과 음악으로 풀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금호강, 팔현습지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나무 한 그루의 결을 따라 내다 어느새 군락지를 거닐다보면, 일상적인 풍경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로 인도한다.
대구시가 2024년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이곳은 훼손될 위기에 놓여있다. 교량형 탐방로 공사 구역에 팔현습지가 포함되었기 때문인데, 지역의 환경단체들은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며 어떤 재개발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영화 제작을 계기로 5명의 예술인이 모여 ‘금호강 디디다’ 활동도 진행되고 있으니, 함께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 본 리뷰는 오오극장 기획전 '대구독립영화연말정산 2024' 프로그램 노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