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④ <이립잔치>, <OK 목장의 결투>, <사라지는 것들>, <고요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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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립잔치> 리뷰

김주리



 어떤 딸들에게 엄마는 그야말로 평생의 미스터리다. 정말 이해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서 미치겠고, 그렇게 이해하기가 어렵다가도 어느 순간 그의 전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은, 아주 오래된 숙제 같은 사람. 극중 유영에게도 엄마 혜자가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유영은 서른이 됐다. 그리고 유영의 엄마인 혜자는 꼭 환갑이 됐다. 유영은 엄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모녀가 오랜만에 재회를 했다는 감상적인 사실에 도취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서로가 익숙하지만 동시에 너무 어색하기도 했던 탓이다. 해야 할 말은 얄궂은 타이밍으로 비껴나고, 서로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서로를 타박하기에 바쁘다. 서로의 배려는 그 의도와는 달리 번번이 빗나가는 것 같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유영은 엄마에게 화해를 시도한다. 유영이 어디론가 사라진 엄마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또 화가 난 엄마에게 다시 한 번 넌지시 대화를 요청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유영이 엄마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엄마와의 추억을 섬세히 돌이켜본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함께 나누어먹은 음식의 양이 늘어난 딱 그만큼, 그들에게도 서로를 대하는 또 다른 경험치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바로 그 엄마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느낌을, 영화는 인물간의 대화와 인물 사이의 거리 등을 이용해서 작품의 안쪽으로 힘껏 끌고 들어온다. 비교적 보편적인 그 감각은 우리 안에서 진득하게 머물다가, 마침내 우리를 유영으로 바꾸어 우리 앞에 놓인 이 마음을 앞으로 어떻게 확장시켜나갈지 함께 고민하게끔 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운 얼굴을 한 번 떠올려본다. 우리들도 여전히 서로를 오롯이 이해하고 사랑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어쩌면 우리들이 절친해질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만은 접지 않기로 한다. 그것만으로 우리들은 이전보다는 조금쯤 더 나아갔으리라고 믿는다.

영화에서는 성당이라는 공간이 이야기의 도입과 말미에 나란히 두 번 등장한다. 우리가 으레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성모님의 그것과 닮았다. 그러나 우리들 삶 속의 어머니는 단지 거룩한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부딪히며 이렇게나 서로 다른 인간들이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감히 생각한다. 전반부의 성당이 엄마의 공간에서 후반부의 엄마와 딸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확장시키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때의 그 감흥을 되새겨본다.

 

 

 

<OK목장의 결투> 리뷰

금동현



 

 방 안에서 아이가 서부 영화를 볼 때 아버지의 목장은 재개발 지역에 선정되었다는 고지를 받는다. 다음 날 아이는 영화에 들려 양아버지의 목장을 지키는 보안관으로 분한다. 영화 속 보안관처럼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혁대에 화약총까지 찬 아이는 제법 보안관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같다. 아이는 환상 속에서 보안관처럼될 수 있지만, ‘처럼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은 이내 아이의 환상을 깨트릴 것이다.

 〈OK 목장의 결투는 환상 속의 아이를 오래 따라간다. 영화의 대부분은 서부 사나이로 분한 아이가 마을을 순찰하는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대사도 거의 없고, 종종 아이가 보안관인양 하는 행동을 볼 뿐이다. 여기에는 물론 긴장이 있다. 장르적인 상상력을 통해서 현실을 환상이 압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압도의 카타르시스조차 긴장이 전제될 때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OK 목장의 결투가 이러한 긴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OK 목장의 결투의 끝에서 재개발을 고지하는 직원이 아이의 환상에 잠시 입회해주는 장면이 꽤 재밌고, 바로 거기서 이야기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에 영화는 끝을 맺는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는 직원이 두고 간 공문의 행정력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꽤 쓸쓸해 보이는 장면은 다소 의문스럽고 뜬금없기까지 하다. 물론 그 장면을 환상이 현실을 아주 잠깐견디는 틈새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영화의 중간에 나왔어야 할 터이다.

 물론 OK 목장의 결투의 목적이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공간, 장면 같은 데서 오는 무드가 영화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기실 목장은 영화적인 요소로 가득한 공간이다. 환상과 현실의 중첩을 유지하면서도 영화적 요소로 가득 메울 수 있는 자연과 동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OK 목장의 결투는 이런 요소들을 촬영하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들> 리뷰

박정윤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제목 덕분에 영화가 열리는 순간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그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엔 사라지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해의 여름과 그해의 더위는 딱 그 시절에만 있는 것이다.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는 자리엔 원래 있던 논과 밭이 사라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도, 그 친구와 종일 동네를 거닐며 나누었던 대화도 이젠 그 어디에도 없다. 영화 <사라지는 것들> 속에 남은 곳곳의 풍경과 바람과 소리와 흔적은 이제 그곳을 다시 찾는다 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도시와 시골의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깻잎 밭이 사라진 자리에 과자 공장이 들어섰다는 말처럼 아직도 이곳에선 무언가가 사라지고, 동시에 무언가가 생겨난다. 영화의 제목이 사라진이라는 과거형이 아닌 사라지는이라는 현재 진행 중인 단어로 표현된 건, 이곳이 아직 사라지는과정에 놓인 공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아니, 어쩌면 영화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이 사라질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결국엔 사라지고 말 것들에 대한 감독의 애틋한 시선이 영화엔 가득히 남아있다.

 시골의 풍경과 시골로 소리로 시작되는 영화는 점차 푸른 강가와 높은 건물이 함께 보이는 장면으로 이어지더니 곧 소음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게 마치 수연이 원래 살던 동네의 누군가가 도시 속의 수연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라지는 것들>은 이처럼 풍경 인서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영화는 고요하다. 고요한 풍경 위에 수연과 경민 두 사람만이 존재한다. 그저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어느 순간에 두 사람이 걸어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영화의 이런 고요가, 일일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려는 배려가 관객에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내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경민이 이미 사라진 존재라는 것을 감출 생각이 없는 듯이 군다. 그렇다면 수연도 사라지는 중인 걸까. 많은 것이 사라지고, 또 새로 생겨나는 이곳은 어디일까. 13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 내내 영화의 곳곳을 들여다보며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누군가는 불친절이라 말할 수 있는 이 방식이 난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친절함이라 믿는다.

 

<고요 한가운데> 리뷰

류승원



 소년을 지켜 줄 가정은 무너져있다. 오히려 고등학생인 선우(소정민)’는 자신의 가정을 대표해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가야만한다. ‘살아생전 할머니께 상당히 총애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 선우의 아버지가 왜 무너진 것인지, 선우네와 다른 친척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같은 원인에 대한 대답은 <고요 한가운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고요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결과 뿐이다. 김현진 감독은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어른들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주길 간절히 요청하듯 장례식 기간 동안 불가피하게 친척들과 함께 할머니의 장례에 임하는 선우의 행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고요 한가운데>에서의 선우의 행적, 선우가 움직이는 매 순간 거기엔 파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거기에는 선우의 동적인 움직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적인 친척들의 몸짓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선우가 본래 지닌 육체다. 소정민 배우의 건장한 육체는 이미 타자의 곁에 서는 순간 시각적으로 웬만한 이들을 압도한다. 게다가 아직 타협을 모르는 듯한 선우의 분노는 자신의 건장한 육체에 더욱 힘을 부여하는데, 이 커다란 육체의 활동에 맞서 친척들이 자신들을 지키는 방식은 단체화이다. 선우의 통제되지 못하는 분노의 대상은 항상 개인이 되지 못한다어느 개인을 향해 선우가 분노를 호소하더라도 어느덧 그의 주위로 다른 이들이 모인다. 들끓는 선우의 육체는 그렇게 다수에 인해 제대로 발산되지 못하고, 점점 연소되어간다.

 아마 김현진 감독은 <고요 한가운데>라는 제목에서 고요라는 단어를 친척들의 반응에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거기에 균열이 존재하지만, 균열이 일컬어지지 않는 상황. 선우라는 존재는 그 타협의 장소에서 균열을 일깨우는 침입자에 가깝다-여기서 선우가 균열을 내지않는 것이 중요하다. 균열을 묻어둔 타협의 장소에서는 그런 침입자를 맞아 줄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소와 관련하여 하나의 이상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선우가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잠시 떠나 어머니와 통화하는 순간 카메라는 선우의 집과, 거기에 머무는 선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춘다. 어머니는 TV를 보며 넋을 잃고, 아버지는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카메라를 등진 채 누워있다. 선우의 집이라는 또 다른 균열의 장소. 하지만 선우의 집은 장례식장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데, 선우와 어머니의 통화에서 그 원인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균열을 인정하고 나누는 그들의 대화와 균열이 스스럼없이 물질화 되어있는 공간. 거기엔 타협이라는 거짓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 선우가 돌아갈 집이라는 공간은 그 균열이 가시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진실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고요 한가운데>가 결국 장례식, 즉 제의의 영화라는 점이다. 그 지점에서 <고요 한가운데>의 엔딩은 탁월한데, 아마도 2023년 올 한해 나온 대구영화들 중 가장 훌륭한 라스트씬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의 관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저 멀리 뒤쪽에서 누군가 절을 하고 있다(아마 크레딧으로 유추해 보건데 선우의 아버지일 것이다). 선우는 그를 보지 못한다. 다만 가늠할 뿐이다. 유독 이 엔딩 장면에서만 이 영화를 내내 지배하던 타협과 균열의 불협화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고요한 순간이다.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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