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③ <천국의 문>, <프리즈마>, <화생방>, <혜림이>, <크라임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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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리뷰

김주리


 

  흥신소에서 일하는 두 남자, 용배와 성태는 어느 날 어쩐지 수상한 의뢰를 받는다. 의뢰인은 어느 귀부인으로, 요청대로 사진 속의 장소를 찾아내자 수상한 주문을 외며 그들을 겁먹게 하더니, 심지어는 그들에게 위험한 부탁을 새로이 던져놓는다. 그들은 잠시간 고민하다 결국 성태를 의문의 문 속으로 홀로 들여보내기로 한다.

 <천국의 문>의 세계는 보이는 것보다도 (혹은 앞선 문단에 기재된 것보다도) 훨씬 깊고도 넓다. 흥신소의 두 남자 사이에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귀부인의 수화기 너머에 있었을 ‘영감님’ 혹은 ‘회장님’은 어떤 인간인지, ‘산’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어린 영혼은 어떤 영문으로 발 묶이게 된 것인지, 그리고 문 너머에 진정으로 무엇이 있는지, 정말로 그것이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었는지. 이야기 아래에 무엇이 존재했던 것인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공포는 차근히 확장된다. 이처럼 <천국의 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설득력 있는 여백을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자극시킨다.

 또한 탄탄한 이야기의 토대 위에 세심하고 감각적인 연출이 합쳐져 장르적 재미를 돋우는 것 역시 <천국의 문>의 탁월한 지점 중 하나다. 지금 여기의 현실로부터 오컬트와 무속의 추상적 세계에까지 그 범위를 넓히며 <천국의 문>은 장르영화로서의 장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한편, <천국의 문>은 그야말로 천국으로 가는 문을 찾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천국의 문’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상의 한 쪽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용당하며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좋고 그런 건 비싼 데 가야 있기’ 때문에 편의점 김밥으로 대충 한 끼를 때우는, 밀린 유류비를 돌려주려니 어쩐지 아까운 기분이 드는,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로또 용지를 보며 ‘내 희망’이라고 외치는, 그리하여 해괴한 요청에 홀린 듯이 응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피라미드 저 꼭대기에서 가장 아래에까지 빼곡하게 줄지어있다. 위쪽에서는 아래에다 대고 ‘더 들어가야’ 한다고 짜증을 내다가 이윽고 ‘그냥 (줄을) 놓아버리라고’ 말한다. 세상은 마치 종국에는 모든 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으로 짜여 있는 것만 같다. 이곳에 과연 정말로 천국의 문이 존재할 것인가. 공포란 실질적으로 현실의 서글픔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천국의 문>은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불합리를 등에 지고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삭막한 일상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비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무궁무진한 세상의 위험 속에서 어떻게 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천국의 문>이 건드리는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공포는 이런 의문에 대한 것일 터다. <천국의 문>은 특유의 관찰력 그리고 통찰력으로 개인의 일상의 파괴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후벼낸다.




<프리즈마> 리뷰

박정윤



 딸 재희를 데리고서 온종일 일자리를 찾아다녔던 민애의 고된 하루. <프리즈마>를 단순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땐 이 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여성의 음성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쉽게 그들이 있는 장소를 어린 아이가 있기에 잘 어울리는 곳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스케치북의 그림을 보여주는 커트에서 그 다음으로 넘어갔을 때에야 깨닫게 된다. 고요한 복도,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여자, 면접실에서 나오는 단정한 차림의 민애. 면접을 보는 장소까지 아이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겠구나. 그 감상으로 첫걸음을 뗀 영화였다.

 재희는 엄마를 따라다니는 내내 프리즈마 색연필을 소중하게 쥐고 있다. 민애는 넉넉하지 않은 사정에도 재희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고 싶어 미술 학원에 보낸다. 그런 마음으로 재희에게 사주었던 색연필일 것이다. 그러나 재희의 색연필은 급히 발걸음을 재촉할 때 바닥에 쏟아지고, 민애의 깨끗한 흰 블라우스에 얼룩을 남기기도 한다. “젊은 애기 엄마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애도 어리고.” 민애에게 재희가 짐이었을 리 없음에도 일을 구할 때만큼은 재희의 존재가 자꾸 꼬리표처럼 따라붙듯이 말이다. 사실 민애에게 이 하루만 고단하였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보지 못한 어떤 시간에서 민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떠밀려 와 자리 잡아야 했을 테고,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을 테고, 점점 길어지는 무급 휴직에 불안해했을 테고,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을 마련해야 했을 테고, 더운 여름날 일을 구하러 발품을 팔았을 테다. 현실에는 수많은 민애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민애의 ‘고된 하루’는 비단 민애 한 사람만의 하루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는 그들의 사정을 딱하게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친절하지만은 않다. 이런 세상에서 다들 한 번쯤은 지치고 지쳐 자신의 짐을 덜어내고 싶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민애가 육교 위에 재희의 색연필을 두고 온 것처럼 말이다.

 민애는 내내 붙들고 다녔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재희의 손을 어둑해진 저녁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야 살피게 된다. 색연필 자국이 가득 묻어있는 조그만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민애의 마음을 얕게나마 짐작해본다. 민애의 블라우스에 묻은 색연필 자국은 얼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지개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민애의 고단한 마음에 재희가 가진 밝은 색깔들이 번져가는 순간이지는 않았을까. 고된 하루의 끝에 비로소 마주한 가장 따듯한 응원. 이제 나는 <프리즈마>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화생방> 리뷰

정교휘

 

 

 영화는 학생들이 일렬로 도열한 채 선물을 상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본인의 선물이 검사당할 때 보이는 교차 클로즈업씬은 마치 화생방에 들어온 듯 숨막힌다. 선물에 담긴 성의가 상급자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찍힘은 곧, 같은 기수 네 명 중 한 명이 무조건 퇴출당하는 동아리 규칙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겨우 동아리 퇴출이잖아? 치부할지라도 과학올림피아드 수상 스펙을 만듦으로서 의대 진학의 초석으로 기능하는 초엘리트 동아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목적에 충실하려는 주인공 ‘수진’은 선물 상납의 실패로 위기에 처한다. 그녀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이는 선생, 부모 같은 분명한 상급자가 아닌, 고작 한살 위의 선배들이다. 하지만 후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위자다. 영화의 제목 <화생방>이 자동적으로 군대를 연상시킴은 물론, 영화의 내용 또한 도열, 상납, 관등성명, 위계질서, 악행 대물림 등 군기 문화를 담고 있다. 군기는 서열 사회를 유지시키는 하나의 도구이다. 군기뿐만이 아니라 실력과 상관없이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응대에서 계급의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저 집단의 규칙에 순응하며 찍히지 않고 안전하게 그룹 속에서 있을 수도 있다. 찍힘, 왕따, 쫓겨남은 계급 상승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화는 엘리트 동아리라는 학교 안의 작은 그룹에서 살아남으려는 수진의 모습을 통해 비단 군기는 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고에도, 나아가 사회 곳곳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한 명이 꼭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게 전통이자 규칙이야.”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의 규칙에 항거하는 다혜에게 선배는 그저 이곳의 규칙임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결국 아무도 퇴출당하지 않고 동아리에 남을 수 있는 공존의 방안은 각각의 생존이 급해 모색되지 못하고, 규칙을 지키는 이들에게 거부된다. 훌륭한 성적과 위기에 처한 친구를 옹호하며 문제재기 하던 다혜는 그럼으로써 찍히게 된다. 퇴출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상냥함의 가면을 쓴 우두머리 선배 지연은 공고해질 자신과의 관계를 미끼로 수진을 대리인으로 내세운다. 결국 수진은 친구를 배신하고 살아남는다. 영화는 수진이 다혜를 배신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그렇게 유지되는 집단의 방식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마지막 장면, 수진은 선배의 자리에 위치해있다. 어쨌든 수진은 생존했으니 다행인걸까? 

 살아남다보니 차가워진 모습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서 당연한 게 된다. 화생방은 해로운 가스임을 알면서도 강제로 마셔야만 하는 곳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해도 여전히 서열 사회 안이라는 것을. 살아간다는 것은 답답한 화생방에서 계속 버티는 일, 다시 사이렌은 울리고, 가스, 가스, 가스.




<혜림이> 리뷰

류승원



 영화가 시작되면, ‘진영(최용현)’의 폭력의 여파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식육식당 맞은편에서 담배를 펴고 있던 ‘기홍(이승재)’에게까지 전달된다. 진영의 아우성을 들은 기홍이 피우던 담배를 급히 끄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술에 취한 듯 보이는 진영의 불콰한 얼굴과 깨진 소주병을 쥔 그의 손이 눈에 띈다. <혜림이>는 그렇게 진영이 지닌 폭력성의 위험을 감지하며 출발한다. 그리고 진영의 딸인 ‘혜림(박은진)’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 채 폭력의 위험이 도사리는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혜림의 어머니는 재혼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유추하건대 혜림의 양부모가 이혼을 한 가장 큰 원인은 진영이 지닌 폭력성으로 보인다. 혜림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진영과 어머니와의 함께 살던 시절의 향수 때문에 진영을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혜림이 진영을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찾아온 목적성을 한 번도 먼저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혜림조차 자신이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를 모르거나. 혜림은 어쩌면 진영이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먼저 알려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진영의 말들에 여러 차례 반항하더라도.

 혜림은 이미 회복될 수 없는 관계들과, 자신조차 명확히 모르는 대안들에 진영에게 이미 불가능해져버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딸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진영은 괴로워한다. 그 간극 사이를 좁히고자 하는 데에서 혜림의 폭력성이 드러난다. 진영처럼 물리적인 폭력은 없어도, 혜림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진영에게 불가능을 강요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붙인다. 어쩌면 <혜림이>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의 폭력성에 뒤늦게 대항하는 딸의 폭력이자 복수극일지도 모른다.

 이미 어머니의 재혼에 대한 진영의 담담한 태도를 들어버린 시점에서 혜림의 행동은 더 이상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혜림은 그 무의미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만의 폭력으로 진영과의 관계를 지속시킨다. 혜림은 진영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런 자신의 폭력이 진영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끝내 진영을 떠난다. <혜림이>는 이미 지나버린 관계를 폭력으로 연장시키고 끝내 그 끝에 공허만이 남는다는 것을 직접 확인을 하고야만다.

 그건 어떤 뚝심보다는 차라리 미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진영을 떠난 혜림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무력함과 마주한다. <혜림이>는 진영에게도, 혜림 자신에게도 폭력을 가해서 얻어낸 너무나도 아픈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진현정 감독은 이미 예정되어있던 결말이라도 어떤 관계의 끝자락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했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지난한 과정과, 거기서의 어떤 자각 이후 진현정 감독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Crime #.> 리뷰

류승원



 <Crime #.>은 제목 그대로 범죄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의 범죄는 지극히 사적이다. 유지영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범죄들을 몇 개의 챕터로 나눠 이미지로 풀어낸다. 여기서 서사는 배격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서사는 한 쇼트, 혹은 한 프레임 안에서 거의 마무리된다. 이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짧은 쇼트들과 프레임들은 서사가 되기 이전에 순간에 그쳐버린다. 이 순간들만 포착하는 것은 어쩌면 그 개별성들이 지닌 이미지의 아름다운 때문만이 아니라, 그 개별성들 때문에 상응하지 않아 서사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첫 번째 챕터인 ‘Silence’에서 카메라가 이윽고 터널의 암부를 마주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암부가 짙은 곳에서 유지영 감독이 누워있는 쇼트가 연이어 나온다. Silence에서 암부는 무엇보다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Silence에서는 무엇이 빛을 받아 우리 눈에 존재하는가 보다, 차라리 무엇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이 챕터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그림자인데, 이 개념을 조금 더 확대시켜보자면 역광을 받아 카메라 상에 어둡게 비춰지는 인물들까지 그림자의 어둠처럼 존재하는 방식을 보면 인물들의 본체조차도 그림자로 보인다. 순간들에 그치는 쇼트들과 거기에 짧게 할애되는 시간들.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인물들. 무언가 움직이지만 결국 그 운동은 짧게 끝나고, 대상들은 시종일관 어둡게 비춰진다. 의 Silence 챕터는 대부분 일상이지만, 그 일상들은 어딘가 생동하지 않는다. 거기엔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 있다.

 두 번째 챕터인 Scene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나열된다. 대상은 일상의 흔적들, 쓰레기들과 그 외의 치워야할 것들이다. Scene의 대상들은 버려져야할 것들과, 혹은 다시 깨끗하게 태어나야할 것들이다. 여기서의 대상들은 아마 거의 모든 인간의 기준으로는 현재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세 번째 챕터는 두 가지다. Dogma와 Guilty. Dogma는 동물들의 일상을 시종일관 보여주지만 동물들은 창살에 갇혀있다. 동물원의 동물들. 거기서 카메라는 창살을 넘어서서 동물들을 담기는 어렵다. 카메라는 창살을 찍지 않으면 동물들을 찍을 수 없는 것이다. Guilty에서 유지영 감독은 자신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어떤 형태의 빛과 함께 헤드폰을 낀 채 유지영 감독은 무언가 웅얼거린다. 그 웅얼거림은 이 챕터가 Guilty라는 점에서 죄책감에 대한 독백일수도, 아니면 단순히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일수도, 혹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일수도 있겠다. 왜 세 번째 챕터만 두 가지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왜 제목이 <Crime #.>, 즉 범죄여야만 했을까. 이 질문들이 유추는 되더라도 무엇도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Crime #.>은 결국엔 그 모든 것들에 어떠한 형태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죽음들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스스로 생동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 느껴진다.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네트워크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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