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Interview] 여기는 실전입니다 | 대구영화학교 6·7기 졸업생 좌담

키워드: 대구영화학교, 6기, 7기, 졸업작품



여기는 실전입니다 — 대구영화학교 6·7기 졸업생 좌담

대구영화학교 8기 모집을 앞둔 시점, 6개월 간의 영화학교를 가장 가까이서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작은 좌담을 마련했다. 대구영화학교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 시나리오와 씨름하고 현장에서 슬레이트를 잡았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영화학교를 다시 그려보는 자리. 좌담에는 6기 연출전공 성광제, 7기 촬영전공 최정인, 7기 연출전공 김아인이 참여했다. 진행은 창작지원팀의 이승우가 맡았다.



그래서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어요?

이승우 — 식상하지만 첫 질문은 “지원동기”입니다. 영화학교 들어오기 전에 뭘 하고 계셨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


최정인 — 저는 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있었어요. 방송국 활동도 하고 영상 공모전도 나가고, 쭉 그쪽 길로만 달려왔는데 3학년쯤 되니까 갑자기 길이 막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휴학하고 잠 못 이루던 어느 밤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게 방송국 PD인가 기자인가, 아니면 직접 이야기를 쓰고 연출하는 쪽인가 깊이 생각해봤어요. 결론은 후자였는데, 영화는 너무 막연하고 큰 벽 같아서 회피해왔던 거예요. 한번 용기 내서 검색해보다가 대구영화학교를 발견했고, '여기다' 싶어서 휴학하고 들어왔습니다.


김아인 — 저는 경기도 성남이 고향이에요.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많이 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만드는데 까지 연결이 됐어요. 성남이나 서울 쪽에서 소규모로 크루들을 모아서 짧게 짧게 습작 단편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구로 오게 됐는데, 영화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혼자 못 하는 작업이잖아요. 대구에서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대구에서 영화하는 사람들이 누구고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야 하나 찾았는데, 마침 대구영화학교가 나왔어요. 


성광제 — 저는 시작이 2020년 코로나 때예요. 대구단편영화제의 단편제작워크숍인 '딮하고 숏하게' 프로그램에 제작 역할로 지원해서 처음 영화를 만들었고, 그 해에 영화제 스태프로도 일했어요. 그 사이에는 임용시험 준비를 했는데, 영화 현장이나 영화 만드는 일에 계속 기웃거렸던 것 같아요. 영화학교 2기 졸업작품에 미술 스태프로도 참여하면서 제작 시스템을 경험하긴 했는데, 그때까지도 뛰어들 용기가 없었고요.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며 결국 마음이 가는 쪽은 영화라는 걸 깨닫고, 2024년에 제대하자마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자' 해서 지원했습니다.


이승우 — 광제 씨는 임용이라는 다른 길이 있었잖아요. 대구영화학교는 거의 6개월 이상을 풀타임으로 참여해야 했는데 망설여지진 않았어요?


성광제 — 들어가고 나서 알았어요. 빨리 죽을 것 같았거든요(웃음). 연출이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 좋아하는 거 하면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결심한 건 ‘임용은 일단 쳐다보지도 말자, 6개월 오롯이 여기 쓰자’였고. 후회는 없습니다.



면접 때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이승우 — 면접 때 기억 남는 질문이나 코멘트 있어요? 8기 지원자한테 팁이 될 만한 거.


성광제 — 부끄러운 기억인데, 저는 이 말 하고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왜 지원하셨냐"는 질문에, 영화제 스태프 하면서 단편들을 많이 봤는데 "아, 저런 (일상적인) 주제로도 영화를 만드는구나!" 했던 게 계기였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뉘앙스가 그만 "아, 저런 걸로도 만드는구나~" 같이 비아냥하는 느낌으로 나가버려서 면접관 분들이 다 당황하시거나 웃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머리가 새하얘져서 해명한다고 엄청 버벅댔습니다. 결국 합격은 했으니, 소신껏 진심을 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아인 — 저는 짧게 써간 트리트먼트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이 느낌은 왜 이렇게 썼는지, 의도가 뭔지. 그리고 좀 늦은 나이에 연고도 없이 지원했다 보니까 "6개월을 시간적으로 온전히 쓸 수 있냐"는 현실적인 질문도 있었고요. 당시 연출전공 강사셨던 김현정 감독님이 질문도 많이 해주시고 소통을 잘 해주셨던 게 기억나요. 다 비슷할 텐데, 워낙 긴장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채로 나왔다가 지하철에서 '왜 그렇게 대답했지' 후회를 계속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정인 — 저는 그때 넷플릭스에서 영화 고를 때 ChatGPT한테 추천을 받곤 했거든요. 촬영전공 강사셨던 고현석 감독님이 최근에 본 영화를 물으셔서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이라고 답했더니, "왜 굳이 그 영화를 봤냐, 하네케 작품 중에서 수작이라고 보긴 어려운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솔직하게 ChatGPT 추천이었다고 말씀드렸죠. 돌이켜보면 솔직한게 제일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이승우 — "최근에 본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매년 단골 질문인데, 의외로 준비 안되어 있는 분들도 꽤 봤어요. 다른건 몰라도 이 답변은 꼭 준비하셔야 할 것 같네요. 



왜 다들 연출 전공일까

이승우 — 매년 지원자가 거의 다 연출로 몰려요. 지원하는 입장에서, 다른 전공들은 딱히 메리트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요?


최정인 — 영화 하기 전에는 보통 전면에 나오는 사람이 감독이니까 그렇게 보이기 쉽고, 영화를 하려는 사람들은 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연출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김아인 — 저는 살면서 일하고 사회생활하면서 협업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라고 느꼈어요.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파트가 좋을까 한참 고민했는데, 다방면에 관심 많고 사람들과 협업하는 걸 좋아하니까 연출이 적성에 가장 맞겠다 싶었죠. 그런데 졸업하고 작품하고 피드백 받으면서 깨달은 건, 연출은 커뮤니케이션이 전부가 아니구나 깨달았습니다. 가치관과 시각, 시나리오의 깊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그쪽을 보완하려고 하고 있고요. 사실 제 성격상 촬영이든 제작이든 다 재밌게 했을 것 같아요.


성광제 — 다 그렇게 지원하는 이유는 결국 '내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다'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다른 전공이 메리트가 없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는 1지망을 촬영이나 제작으로 둔 분을 많이 못보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화면 구성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작 PD는 정말 체질이 따로 있는 것 같고요. 다시 지원한다면 저는 촬영을 해보고 싶어요. 사진 촬영도 취미로 하고 있고,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작업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이승우 — 사실 박재현 감독, 이호철 감독처럼 촬영전공으로 소신지원해서 수료하고 졸업 후에 연출을 잘하는 케이스가 많긴 하죠.감독이 목표라면 연출 외 다른 전공을 경험해보는 것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정말 빡셌던 건

이승우 — 영화학교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뭐였어요?


성광제 —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들을 좀 믿어줘야 하는데 자꾸 저 혼자 붙들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영화는 협업인데 불안하니까 부탁하거나 시키지 못하고 너무 "내가 할게"만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효능감이 떨어지게 만든 거죠. 둘째는 좀 이상한 표현인데, 11명이랑 동시에 연애하는 것 같았어요. 좋은 의미라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분과 원하는 것을 계속 조율하다 보면 애증의 관계가 되거든요. 바로 풀지 않으면 꽁해지고 트러블이 생기고. 협업과정에서 마음을 어떻게 쓰고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가 가장 어려웠어요.


김아인 — 저도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중간과제 때. 다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예산은 한정돼 있잖아요. 졸업생 분들이 두 분이 멘토로 오셨는데, 그분들 페이 빼고 세금 떼고 나면 공간 대여비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 예산한계가 빡셌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때 만난 홍신이 형(4기 촬영전공), 석현 님(5기 연출전공)이 지금까지 큰 도움을 주시는 좋은 인연이 됐어요. 둘째는 졸업영화 때였는데, 키 스태프 3명만 프리프로덕션을 같이 하고 다른 팀원들은 메인 프로덕션 때 품앗이 형식으로 들어오는 구조잖아요. 그러다 보니 키 스태프끼리는 공유가 잘 돼도, 현장에서 다른 분들과 사전 내용 공유가 잘 안됐었어요. 다시 돌아가면 더 잘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최정인 — 저희 기수는 4팀 모두 굳이 굳이 촬영 일정을 한 달 안에 다 몰아서 했거든요(웃음). 선생님들이 걱정하면서 말리셨는데, 할 수 있다고 굳이 굳이 몰아서 스케줄을 짰는데… 하지말라는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웃음) 한 팀 끝나고 휴차 없이 바로 다음 팀, 또 다음 팀 하는식이니까. 휴차도 별로 없이 촬영들이 이어지니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어떻게 하긴 했는데, 그래도 해냈다는게 신기하긴 하네요.



다른 일과 병행 가능한가요?

이승우 — 지원하시려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 중 하나예요. 대구영화학교가 주 4일 수업체계잖아요. 실제로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소화할 수 있습니까?


성광제 — 저는 주말에 알바를 했는데, 나중에 그게 계속 발목을 잡더라고요. 영화학교에 매진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있어요. 사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시간을 쏟을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알바도 안 했을 것 같아요.


김아인 — 저도 알바 계속 했어요. 현실적으로 월세 내고 밥 먹고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는데, 다행이 좀 수월한 일이어서 할 만은 했어요. 다만 주말 알바 정도까지가 마지노선인 것 같고, 그 이상이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사실 대구영화학교는 그냥 영화가 뭔지 궁금해서, 아니면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하면서 가볍게 찍먹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다니기는 좀 힘든 곳 같아요. 커리큘럼도 빡빡하고, 동기들의 마음가짐이나 선생님들의 분위기도 ‘와… 진심이구나’하는 느낌이 컸어요. 자기 시간과 열정을 충분히 내어주어야 가능하고, 단순 경험만을 위한거라면 빡쎄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정인 — 저는 운 좋게 부모님 도움으로 알바를 안 해서, 오히려 주 4회가 너무 좋았어요. 영화에 매진할 수 있어서. 다만 지금 돌아보면 주말이나 남는 시간을 좀 더 쓰면서 매진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영화학교에 들어왔다고 저절로 영화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좀 더 스스로 갈고닦았다면 결과물이 좀 더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승우 — 과제는 어땠어요?


김아인 — 양이 진짜 많아요. 이론 수업에서도 영화를 많이 봐야 하고, 연출 과제도 많고, 촬영 미션, 제작도 과제 있고요. 일주일이 진짜 빡빡했어요. 식당 같이 힘든 알바나, 종일 알바하면 소화 못할 정도이긴 합니다. 저처럼 좀 한가한 알바 정도여야 가능해요.


성광제 — 저는 실제로 주말에 식당 알바했거든요. (웃음) 머릿속에는 할 게 가득인데 계속 서빙하고 있는 그 기분이 진짜… 과정 뒤로 갈수록 회의도 많아지고 만나서 얘기해야 할 시간도 많아지니까, 진짜 학교 다니는 것처럼 오롯이 쏟는다고 생각하시는 게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 가장 좋았던 수업

이승우 — 그래도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죠?


성광제 — 모순적인데, 저는 가장 힘든 타이밍에 가장 재밌었어요. 시나리오가 안 풀리고 다들 예민해져 이견이 생길 때, 한두 개의 힌트로 시나리오가 확 바뀌면서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순간이 이상하게 좋더라고요. 혼자 생각했으면 안 됐을 것들이니까.


김아인 — 저도 비슷해요. 졸업작품 촬영할 때요. 프리프로덕션은 너무 좋았지만 너무 힘들기도 했어요.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고 서로 피드백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다 초보다 보니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건가 확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빨리 현장 들어가고 싶었어요. 잘하든 못하든 일단 실행해보고 싶었으니까.


최정인 — 저는 이론 수업 들을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막연하게 갈망하던 걸 배우고 있다는 느낌에 두근거렸어요. "그래, 이게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거야"하면서. (웃음) 그리고 순수하게 재미로만 따지면 졸업작품 촬영 때 바닷가 로케이션에서 촬영할 때 재미있었어요. 막 파도 타면서 찍고, 돌아오는 차에서 촬영팀끼리 노래방처럼 떠들면서 왔거든요(웃음).


이승우 — 좋아했던 수업은요?


최정인 — 이론 수업이요. 평론가님이 영화를 평면적으로 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관점으로 풀어주시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김아인 — 저는 연출 수업이요. 어차피 종이 위에 첫 글자를 쓰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연출 수업은 그걸 강제로 마주하게 해줘요. 김현정 감독님 수업이 열정과 애정이 많아서, 궁금증도 다방면으로 해소되고 가장 재미있었어요.


성광제 — 다 좋았는데, 저도 영화이론 수업이 좋았어요. 한창욱 평론가님이 "영화는 보는 것과 들리는 것 두 개로 이루어져 있고, 의미를 해석하기 전에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이 물성부터 마주해야한다"고 강조하셨거든요. 저는 예전엔 자꾸 의미와 상징으로만 해석하려 했는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주는 인상부터 읽어내는 법을 배운 게 지금까지도 영화를 다르게 보는 관점이 됐어요.



후회되는 것 한 가지

이승우 — 지금 돌이켜봤을 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싶은 게 있어요?


최정인 — 학교에 합격해서 들어간 것에 안주하지 말고, 좀 더 치열하게 깼어야 했어요. 열심히 했지만, 더 할 수 있었던 게 분명히 있었거든요.


김아인 — 저는 그때가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하얗게 불태웠어요.(웃음) 결과가 좋고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후회보다는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가는 느낌이라 좀 후련합니다.


성광제 — 후회는 안 해요. 분명 실패와 실수가 있었는데, 그 실패와 실수 덕분에 지금 알게 된 것들이 많거든요. 다만 다시 한다면, 좀 더 막 나가볼걸 싶어요. 너무 안전하게 이야기를 쓰지 말고, 좀 막 나가볼 걸. 영화과 다니는 형들 보면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실패해도 받아주는게 있잖아요. 영화학교도 그런 자리니까, 더 깨지고 넘어져봐도 됐을 텐데 싶어서 아쉬워요.


이승우 — 막 나가는 것도 재능이긴 하죠.(웃음)


김아인 — 아!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학교 오기 전에 시나리오 공부를 좀 더 많이 하고, 미리 더 많이 써보고 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12명, 가장 가까운 동료들

이승우 — 대구영화학교는 다른 전공 수업도 필수로 다 같이 듣잖아요. 불만은 없었어요?


성광제 — 저는 오히려 다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소통하려면 내 분야만 알아서는 안 돼요.


김아인 — 저도 무조건 필수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한 가지로만 이루어진 예술이 아니니까, 모든 스태프에게 다 필요한 수업이에요.


이승우 — 12명이 모인 집단생활은 어땠어요? 재밌어요, 아니면 어렵기도 했나요?


성광제 — 아까 연애 같다고 한 게 그 얘기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더 그렇거든요. 이 사람의 영화 취향, 이야기, 다 좋아서 같이 하게 된 거니까 갈등이 와도 갈라설 만큼 싸우는 게 아니라, 간극을 줄이고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런 의미구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어요. 피곤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고, 지금까지 도움이 많이 돼요.


김아인 — 저희 기수는 좀 '아이들의 모임' 같은 분위기였어요. MBTI 대문자 I들의 모임 같은(웃음). 중간과제, 졸업작품 찍으면서는 친해질 수밖에 없고 중후반엔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서로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있었죠. 개인적으로 저는 너무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 시간들을 더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워요.


최정인 — 저는 오히려 의견 충돌이 생기는 그런 과정을 기대했었거든요. 청춘영화보면 막 갈등하고 대립하고, 그러다 극적으로 화해하고. (읏음) 그런데 다들 서로 조심스러워서 중반까지는 말도 잘 안 텄어요. 대문자I들은 갈등이 생길 수가 없죠.


이승우 — 듣다보니 분명히 세대마다 문화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이제는 확실히 서로 배려가 있는 분위기로 바뀐 것 같네요.


김아인 — 옛날 분위기에도 분명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술 한잔 같이 먹고 친해지고, 정이나 의리 같은 걸로 엮인 관계가 좀 부럽긴 해요.


성광제 — 그것도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웃음) 



졸업 후, 그리고 지금

이승우 —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앞으로 계획은요?


성광제 — 작년에 6기 동기들이랑 '달고나 필름'이라는 단체로 지원사업과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영화가 아닌 다른 작업들 — 전시, 공연 — 도 하게 됐는데, 거기서 느낀 게 있어요. 영화의 재료는 결국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걷고 보고 듣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얻는 것에서 오더라고요. 영화에만 골몰하면 오히려 영화가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올해는 좀 쉬면서 생계도 챙기고, 강의 같은 것도 해보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영화 바깥의 것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요.


김아인 — 올해는 시나리오 공부하고 쓰면서 내년 지원사업·공모전을 준비하는 게 1차 목표예요. 그다음은 두 갈래인데, 포트폴리오 쌓아서 KAFA도 지원하고 싶고, 아니면 학사든 석사든 공부를 해볼까 싶기도 해요. 늦더라도 조금 더 길게 보고 가는 길을 고민 중이에요.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그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요즘은 음향 믹싱을 혼자 공부하다가, 홍신이 형 따라 동시녹음도 배우면서 현장에 나가고 있어요. 다음엔 제작도 공부해볼 생각이에요. 두루두루 한 바퀴 돌고 나서 연출로 다시 돌아가려고요. 길게 보고 있어요.


최정인 — 저는 졸업 전부터 쓰던 시나리오를 졸업 후에도 계속 고치고 있어요. 9고까지 갔고, 이번 다양성영화에도 냈었어요(아쉽게 떨어지긴 했지만). 학교를 더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영화는 없는 데서 짜낸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인풋이 쌓여야 아웃풋이 나오는 건데, 아직 제 안의 인간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길게 보고 경험을 쌓으면서, 정말 만족할 만한 아웃풋을 내는 게 목표예요.



8기 지원자에게

이승우 — 마지막으로, 지원을 망설이는 사람과 이미 결심한 사람 모두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성광제 — 영화를 좋아하니까 지원하는 건 당연해요. 그것보다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은 건 "왜 나는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만들어야만 하는가"예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 해요. 내 부족함이 뭔지,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만들어진 내 성격과 취향이 뭔지. 그걸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면, 영화를 꼭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힌트가 될 거예요.


김아인 — 8기 지원자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연출만 연출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촬영감독도 촬영의 연출을 하는 사람이고, PD도 작품 전체에 대한 기획과 방향, 영화가 끝나고 세상에 어떻게 나갈지까지를 연출하는 사람이라는거죠. 단순히 재무·회계만 하는 역할이 아니라요. 그리고 연출은 시나리오만 잘 쓰면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현장을 안정감 있게 이끌고, 사방에서 받는 피드백 속에서 멘탈도 잘 관리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능력이 큰 부분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성격과 적성에 맞는 전공을 진지하게 고민해서 선택하면 좋겠어요.


최정인 — 학교라고 하면 배우러 가는 곳, 실습의 장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아직 실전이 아닌 안전한 울타리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여기는 실전입니다.(웃음) 학과에서 제작해 보는 실습과제 같은게 아니고, 본인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붓는 작품을 만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임하시면, 분명 후회 없는 6개월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좌담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녹음기를 끄고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이야기는 한참 계속됐다. 영화 이야기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같은 시기를 통과하며 열정과 우정을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8기의 풍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 같은 방향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결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것이다. 지원을 망설이는 8기 지원자에게, 이 좌담이 결심의 한 조각으로 가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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