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수연의 선율>

키워드: 대구영화, 대구장편영화, 아동, 청소년, 성장, 가족


<수연의 선율> 리뷰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실은 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에게로 향한다. 어차피 개구리 속내를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타인에 대해 과연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 시절 축적된 기억을 간직할 뿐, 당시 상황과 행동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아이들 머릿속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안다고 자만하면서도 실은 두렵다. 그들은 이해 불가능한 존재이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단하는 존재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13살 수연은 영화 시작과 함께 고아가 되었다. 부모의 부재 속에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지만, 이제 세상에 오직 혼자다. 물론 아이는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게 짠 궁리는 하나둘 어그러진다. 손만 내밀면 잡아줄 것 같던 친구도 이웃도 교회도 믿을 구석 하나 없다. 이대로 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보호시설에 수용될 판이다. 수연은 필사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그에게 번쩍이는 계시가 내린다. 7살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가족의 유튜브 채널이다. 나도 저렇게 행복한 가정에 입양될 수 있다면 밝은 미래가 기다릴 텐데, 수연은 Plan-B를 발동한다. 동생이 될 아이의 이름은 선율이다. 선율을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던 수연은 용의주도하게 소율의 양부모와 접촉하고, 소율의 언니 몫으로 입양될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진실은 기대와는 퍽 달랐다.

 

특정 사회가 구성원 중 약자를 보호하는 실행력은 해당 체제 평가에서 가장 우선될 요소다. 전근대 사회에선 자원 부족이 문제였다면 현대 사회는 복잡한 관료제, 전통적 공동체 쇠퇴가 문제 핵심이다. 21세기 한국은 현대 복지국가 시스템에 진입한 상태이지만, 급속한 변화 가운데 이웃과 지역사회 상호부조 기능이 희미해진 빈자리를 메울 공공서비스는 형식은 갖췄어도 여전히 빈틈이 적지 않다. 영화 속 아이들의 시련은 그 틈새에서 비롯된다.

 

감독은 작품 제목과 인물의 이름 속에 많은 단서를 숨겨둔다. ‘수연13살 아이, ‘선율7살 아이 이름인 동시에 험한 세상에서 서로 의지해야 하는 둘의 교차를 통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상상하게 만든다. 수연에게 선율은? 선율에게 수연은? 관객은 화면 속 그들의 관계를 관찰하고 판단하지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설정에서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다만 몇 가지 암시를 통해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수연은 처음엔 선율을 이용대상으로 접근하지만, 어른들은 다가갈 수 없는 선율의 진심에 교감하며 보호하고자 애쓴다. 선율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아이지만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방어막을 두른 상태다. 이해와 단절을 거듭하는 둘의 밀고 당기기는 자석이 붙었다가 떨어지듯 둘만의 중력을 이룬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을 들여다볼 단계다. ‘Waterdrop’, 물방울이다. 세계 사진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찰나]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렌즈처럼 볼록 응결된 물방울은 마치 거울처럼 그에 비친 세계를 담는다. 수연이 바라본 세상, 선율이 바라본 세상이 고스란히 화면 속 물방울에 투영된다. 그들이 바라본 세계의 풍경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반사된다. 조금 더 확장하면, 그들을 둘러싼 ’, 거주공간 역시 물방울과 겹치고 연결된다. 물리적 외형을 넘어 아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감각을 유추하는 건 작품을 독해하는 또 다른 실마리가 될 테다.

 

아이들의 처지는 마치 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반려동물 신세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외톨이 아이들은 어떻게든 구원자를 기대한다. 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은 물론 결핍된 정서적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대를 그들의 시선으로 관찰한다.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면 개나 고양이가 선택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양을 부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위장술을 행한다. 물론 악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천사 같은 외모의 7살 아이도, 타인을 믿을 수 없는 13살 아이도 각자의 맞춤형 가면으로 위장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때로는 처연함을, 혹은 섬뜩함을 발견한다.

 

선율은 다른 수단이 없으니 수동적으로나마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수연은 자신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적 제도는 13살 미성년자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가깝다고 믿었던 이들의 표리부동을 겪으며 방어적으로 가장 나은 조건을 택하게 된 수연은 노력 끝에 성공했다고 믿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것임을 이해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다.

 

근래 해외 영화들에서 시스템에서 자의/타의로 이탈한 청소년의 제도권 바깥 삶이 종종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만의 작은 사회를 형성하는 설정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아이들이 불쌍한 대상화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 판단과 실행 가능한 존재라는 발견의 기회다. 하지만 공권력이 압도적 행정력을 발휘하고 청소년을 그저 보호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탈은 용인되지 않는다. 왜 한국 독립영화에선 찰나일지언정 그런 소수자들의 무정부 공동체를 볼 수 없냐는 요구는 현실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

 

그에 관한 아쉬움은 수연과 선율을 맡은 김보민, 최이랑 두 청소년 배우의 다층적인 면모로 일정하게 보완 가능할 테다. 특히 근래 한국 독립영화에서 유독 돋보이는 김보민 배우의 광대역 연기는 천하제일 가련 캐릭터와 함께 묘한 성적 기운과 속을 알 수 없는 의뭉함을 동시에 뿜어내며 잊기 힘든 존재감을 발산한다. 6에서 중1로 넘어가는 시기의 소 악마적 또래를 온전하게 재현해낸다. ‘발견각인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주변 어른들은 그들의 캐릭터를 통해 각각의 사회적 군상을 맡는다. 복지담당 공무원은 국가의 공적 책임성과 사회복지제도 현주소를 드러내며 내내 곁에 머문다. 비록 한계는 명확하지만 부족하나마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공권력의 양심 같은 존재다. 흥미롭게 구축된 또 다른 존재는 정부의 사회복지 역할을 위탁 대행하며 지역에서 뿌리내린 종교단체의 한계를 표상하는 목사 가족이다. 특히 '사모님'의 다면성을 눈여겨볼 만하다.

 

많은 고심이 중층적 복선으로 구현된 영화다. 친절한 해설 대신에 뚝뚝 끊어지고 생략되는 단절과 도약이 다소 모호하게 보일 구석도 있지만, 불행을 극단화해 전시하는 상투적 방법론을 과감히 벗어난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수연과 선율의 미래를 염려하고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을 관객 각자 가슴 한구석에 물방울처럼 간직하게 될 테다.

관련영화
수연의 선율
| 최종룡 | 108분
촬영 강종수
프로듀서 이정호
출연 김보민 , 최이랑 , 김현정 , 진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