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⑦ <바운더리>,<야식금지클럽>,<파리의 수학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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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 리뷰

김주리

지선은 비정규직인 사회초년생이다. 같은 비정규직 선배인 영주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를 눈앞에 둔 시점, 지선은 영주로부터 진술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공교롭게 동시다발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제안 받게 된다. 영화는 지선과 영주의 처지를 비슷한 듯 아닌 듯 미묘하게 교차시키다 한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두 사람의 상황을 겹쳐낸다. 오랜 고민 끝에 지선은 저 자신의 방식으로, 혹은 자신이 닮아가고자 하는 방식으로 그토록 견고해보이던 문제를 파훼하고자 자세를 다잡는다. 연약하지만 씩씩하게 세상을 마주하려하는 지선의 태도를 감히 응원하지 않기란 무척 어려워 보인다. 배우들의 인상적인 호연과 안정적인 호흡이 공간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공기를 구축해내며 이러한 모든 과정들을 보다 밀도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다.



<야식금지클럽> 리뷰

김건우


김은영 감독의 전작 <더 납작 엎드릴게요>에 이어 김은영 감독은 세 명의 여성을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모았다. 그들은 어느 날, 그들 각자만의 이유들로 밤마다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런 허기를 느끼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그 허기를 이겨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까? <야식금지클럽>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야식금지클럽>은 마치 <더 납작 엎드릴게요>를 잇는 연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를 통해 특수한 직장에서 여성들이 연대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야식금지클럽>에서 역시 삶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들 나름의 연대를 통해 이겨나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에서 회사의 세계를 묘사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과 같이, <야식금지클럽>에서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일들과 욕구의 문제를 다루며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야식금지클럽>은 결코 예상 가능한 결말을 관객들에게 비추지 않는다. 욕망, 그리고 세상을 향한 그들의 투쟁은 결국 어떻게 귀결될까?



<파리의 수학자> 리뷰

박정윤


영화는 감독의 목소리다. <파리의 수학자>에 따르면 예술은 어떠한 메시지를 꼭 전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겠으나 이마저도 감독의 목소리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 목소리들이 <파리의 수학자> 속에는 터져나갈 듯이 가득하다. 영화를 보는 30분 내내 허수의 모습을 한 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든다.

존재하지 않아야 아름답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파이는 써지지 않는 가사의 영감을 찾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닌다. 파이와 리는 실제로는 없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해 허수의 집을 찾는다. 허수는 어떤 논제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간다. ‘허수라는 이름 자체도 실존하지 않는 수에 대한 개념이다. 완벽한 원과 구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거고 개념일 뿐 현실에 실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완벽함이야말로 수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지. 허수의 말을 들은 뒤로는 영화 속에 보이는 모든 원과 구의 형태를 찾게 된다. <파리의 수학자>는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들로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 결국, 이 영화는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이지 않을까.


<새> 리뷰

김주리


우성은 길을 지나다 우연히 죽은 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 새를 감싸 안고서 우성은 당분간의 여정을 함께한다. 오는 버스와 가는 버스의 사이에는 식사와 장난, 편지와 낮잠, 그리고 한바탕 웃음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과정에 깃든 이별과 상실을 기억하고,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며 성숙하게 삶을 긍정한다. 이 영화가 담담하고도 투박하게, 무엇보다 섬세하게 벼려낸 일상의 파편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시금 눈 여겨 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전반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던 특유의 순수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빠듯하게 메운다.



* 본 리뷰는 오오극장 기획전 '대구독립영화연말정산 2024' 프로그램 노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관련영화
바운더리
| 정수연 | 30분
촬영 전상진(컬러플러스)
프로듀서 임진호
출연 서석규 , 이승연 , 홍예지 , 장태연 , 이서하 , 조영근 , 강소령 , 최용욱 , 신웅기
야식금지클럽
| 김은영 | 21분
촬영 전상진(컬러플러스)

출연 손예원 , 김연교 , 장리우 , 곽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