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⑥ <모르게>,<대물림>,<누구나 겨울이 오면>,<아이스크림, 먹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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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게> 리뷰

박정윤(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중학생 소은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엄마와 둘이 산다소은이는 방과 후에는 아빠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와 식사를 함께하며 가족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은이의 교육 문제 때문에 부모님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듯한데, 그게 세 식구가 연결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러니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일은, 이제 다른 학원에 다녀보라는 말은 소은이에겐 이 가족이 완전히 끝나가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르게>는 소은이가 아빠의 여자친구란 사람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아빠 모르게, 엄마 모르게, 당사자인 현서 모르게 하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열다섯 인생에서 가장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소은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어른들도 소은이 모르게 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서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만 소은을 배려하여 거짓말에 발을 맞춰주었다. 여자친구가 생겼냐는 소은의 물음에 아빠가 아니라 대답한 이유도 사실은 소은이의 마음을 염려해서였다. <모르게> 안에 담긴 누군가 모르게 했던 일 중에 나쁜 마음으로 시작된 건 없었다. 거짓말이 연속되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불안감과 위태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상에 따스함만 남은 건, 그 마음들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대물림> 리뷰

김건우(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임용범 감독의 <대물림>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이다. <대물림>에는 제목에도 표현된 것과 같이 대에 걸친 비극을 호러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저예산 독립영화의 틀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나는 <유전>이 소재론적으로나 연출론적으로나 전 세계 호러 감독들을 크게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대물림>도 역시 그 흐름 속에 있는 영화이다.

<대물림>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뜨거운 여름방학을 보낸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대구 근교 산골의 풍경과 낯선 공간의 감각, 아슬아슬한 미스터리의 줄을 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휴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본의 몇몇 여름방학 호러물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의 연기와 이미지가 저예산 호러영화라고는 느껴지기 힘들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의 느낌은 마치 계곡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 같다. <대물림>은 과거의 소름 돋는 악연과 현재의 필연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한 여인의 몸부림과 그것을 추억으로 기록되고 기억되게 만들려는 카메라의 숙고를 담은 노고의 작품이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 리뷰

금동현(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최근 한국독립영화에서 남성성은 화면의 중앙에 잘 포착되지 않는 것 같다. 남성()은 화면의 가장자리에서 주인공을 압박하는 주제로 등장할 뿐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합당한 경위가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두 남성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오늘날의 시점에서는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구태의연한 의미에서 남성성을 옹호하는 영화도 아니다. 노동자성을 방패로 실은 여성혐오를 수행하는 쓰레기 같은 구역질나는 영화에 속하지 않는다.(대구영화의 발전인 셈이다) 이 영화는 남성성이 꺾이는 시점인 중·노년의 주인공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소리도 유순해진다. 무언가를 바닥에 세게 내려놓거나 격앙되게 숨을 쉼으로써 나오는 파찰음이 초반부에 많이 들리지만 내려놓는 지환을 따라 거슬리는 소리도 점차 줄어든다. 그렇지만 <누구나 겨울이 오면>이 무턱대고 과거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무책임함만을 견지하지는 않는다. 철이 지났기에 갱신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은 지환이 집을 나서기 전 방안을 바라보듯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요구되었던 모럴이기도 하니까. 이 정서와 모럴을 놓치지 않은 것은 탁월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기에> 리뷰

김주리(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수민은 저마다 바쁜 세상 속에서 저 혼자만이 유리된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붐비는 길거리를, 그리고 스스로의 복잡한 내면을 헤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이 영화는 용감하다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작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모험적인 조난시퀀스는 전반부에서는 희미하게 드러날 뿐이었던 환상성을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끌고 들어와 수민의 방황에 대입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맞닥뜨린, 혹은 돌이켜본 풍경을, 영화는 따뜻하고 담백하게 직시하며 그녀를 북돋는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기에>는 배우 안수민이 가진 본연의 모습과 감독 장일경이 거쳐 온 공간의 일상적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발굴해내고자 노력한다. 감독이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장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저 자신에게 주어진 적절한 규모에서 발현시킨 이 작품이, 이제 막 발돋움하는 한 감독의 자랑스러운 첫 영화로 남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본 리뷰는 오오극장 기획전 '대구독립영화연말정산 2024' 프로그램 노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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