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나의 피투성이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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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리뷰

류승원


 한 연출자가 이제껏 고유하게 추구해온 방법론을 바꿔 작품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유지영 감독은 전작 <수성못>에서 희정(이세영)’에게 다가오는 정체 모를 숙명적 불안을 한 개인의 형상(얼굴)만이 아닌, 거기를 웃도는 불가해의 영역(풍경)까지 확장해 관객들 각자에게 질문을 던졌다-영화에 이따금 보여지는 수성못의 풍경들의 달리 쇼트들은 이와 관련해 보면 좋을 것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 유지영 감독은 그러한 불가해한 영역을 소거한다. 적극적으로 풍경을 호명하던 <수성못>과 달리,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는 함부로 풍경을 통해 작품이 무한해 질 가능성을 일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자연스레 인물들의 얼굴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데, 주인공인 재이(한해인)’건우(이한주)’ 커플에게 다가오는 전작과 동일한 주제(처럼 보이는) ‘숙명적 불안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에 한정하여 보다 명확한 형상이 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재이와 건우의 로맨스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싸고, 이윽고 점차 파괴하는 주변에 관한 사회적 드라마에 가깝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의 파국은 그들 사이에서 불현 듯 생겨난 아이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둘러싼 주변의 반응과, 그로부터 유추되는 현실이라는 시대에 가깝다-앞서 주지하다시피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그 현실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일축하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재이의 임신 소식에 재이보다는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동기들과 편집자(최희진)’, 건우를 (어떤 의미에서든)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원장(오만석)’미애(박가영)’.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는 이렇듯 재이와 건우에게 가해지는 파국의 형태가 비교적 명확히 인물들의 표정과 언어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 얼굴들만이 재이와 건우에게 가해지는 모든 압력을 포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얼굴들을 통해 이들의 재이-건우의 파국에 대한 가시적인 형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압력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는지의 실마리와 관련해서 재이-건우 커플에게 이 영화가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재이에게는 자신의 불안이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유정(박미현)’이라는 인물이 있는 반면, 건우에게는 그런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반에 유정이 이 영화에서 퇴장하는 방식을 포괄하더라도)재이에게는 잠시나마 소통할 인물이 건우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 차이 하나가 어쩌면 재이에게는 그 파국의 형태가 사고로 찾아오지만, 건우에게는 스스로의 의지로 행해지는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닐까 숙고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인 재이-건우는 왜 서로에게서 소통의 끈을 놓치게 된 것일까. 어쩌면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결국 재이와 건우 사이의 점차 벌어지는 이러한 괴리다. 나는 이 괴리에 관해 그것이 영화의 시간에 한정해 물리적으로 현현하는 종반부의 재이와 건우의 각기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종반부에 재이와 건우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넣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유지영 감독과의 대담에서 그가 말한 발언으로 다시금 고심해보았을때, 그 재이-건우가 함께하는 종반의 순간들을 상상해본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씬들에 비해 정말 의미가 없는(혹은 부족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 시간에는 각자의 생활권에서 벌어지는 타자와의 협력 혹은 대립조차 부족했을 것이라는 개인적 추측은 그 부재의 순간들이 각자가 받아들이는 압력에 지쳐 아무 의미도 발생하지 못(혹은 부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어쨌든 명확한 형상으로 한정 지으려는 시도에 관한 영화이다. 그 형상이 어떤 방식으로던-그것이 타협으로던, 파국으로던-부딪혀야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카메라에 담길 자격이 되는 것이다. 보지 못한 순간에 관해 멋대로 기입하는 것은 위험한(혹은 의미없는) 담론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재이의 유산과 건우의 상해(傷害)보다, 훨씬 더 지독한 파국의 순간은 그 찍히지 않은 재이-건우의 일상에 도사리고 있던 것이 아닐까. 유지영 감독의 본인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몇몇 매체들에서의 인터뷰는, 차라리 파국을 각오하고서라도 맞이해야만 하는 부딪힘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련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2022 | 유지영 | 155분
촬영 김보라
프로듀서 권현준
출연 한해인 , 이한주 , 오만석 , 최희진 , 박미현 ,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