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화리뷰 ② <손끝>, <오촌>, <유,렉카>, <이사의 기술>,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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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리뷰

임아현

 

 

 누군가의 손끝을 잘 들여다본 적이 있나 생각해봤다. 정말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만나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다해도 손 마디 마디 까지 잘 확인해보지는 않는다. 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오히려 낯선 사람들 사이거나 예상치도 못한 순간일지 모른다. 각자의 손끝을 들여다보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고 받는 배려와 위로에 대한 감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인 수민의 친구들은 오만원짜리 네일을 하고 비싸지 않다며 서로 웃고 넘기는데 수민은 빵집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 얼마도 밀려 있어 사는게 팍팍하다. 친구들이 네일을 구경하는 동안 수민은 얼룩덜룩한 손이 부끄럽기만 하다. 내 맘 같지 않은 하루들 사이에서 바르려는 로션은 마침 똑 떨어지고 어쩌면 인생에 되는게 없다는 마음으로 뒤져본 화장대에서는 그다지 예쁘지 않은 매니큐어가 나온다. 정신이라도 다른데 돌려볼 겸 그 매니큐어를 얼룩한 손에 발라보지만 네일을 망치는 소식이 들려온다. 망친 네일이라도 수습해보자하고 아세톤을 사고 나오는 길에는 마치 수민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늦은 저녁에도 불이 켜진 네일샵이 보인다. 어쩐지 네일샵 안은 물건들이 박스에 담겨 휑한 분위기에 처음부터 시큰둥하던 직원은 수민의 붉은 손을 보고도 시큰둥한 것만 같다.

 하지만 어떤 무심함은 어떤 다정함이 되기도 한다. 실랑이 끝에 작은 호의를 받아들이고 작지만 큰 마음을 전해받은 것처럼. 첫 네일 아트를 받은 날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손님을 받은 날이 되었지만 사소한 순간이 마법같은 순간이 되고 손 끝을 아름답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되는 아름다운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누군가의 얼룩덜룩한 손을 보는 순간 차오르던 분노도 화도 조금은 가라앉게 되는 것. 같은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공감 안에서 삶의 어려움도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이 얼룩덜룩해지곤 하는데 아주 조금은 수민의 그런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이해할 수 있는 서로의 작은 공통점을 통해 우리는 삶을 이어나가고 인간애와 같은 것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끝과 같이 작고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더라도 그런 사소한 곳에서 따뜻함이 온다. 말하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봐주고 배려해준다는 것은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마음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손끝은 괜시리 붉어지기도 한다.



<오촌> 리뷰

김주리




 낯이 설어 쭈뼛거리던 애들과 거짓말처럼 금세 친해져 동네를 온종일 쏘다니던 기억을 꺼내봤다.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흐릿하게만 떠오르는 그 애들이 사라지자, 잠깐의 시간을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어쩐지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기억의 가장 앞쪽에 위치하고 있을 상실감이 훌쩍 되살아났다.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법한 감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을 이만큼 성큼 소환시키는 이 영화, <오촌>은 슬기와 정수의 만남(혹은 재회)부터 헤어짐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7살 슬기는 바쁜 어른들 대신 12살 정수에게 맡겨진다. 어색하고 삐걱거리던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나누어 먹고 대화를 나누고 놀이를 하며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필연적으로 다시금 이별이 찾아온다. 슬기는 이 과정에서 이별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고, 더 나아가 타인의 상실감을 이해하게 된다.

 가장 먼저 <오촌>은 슬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더니, 곧이어 동시에 이것은 또한 정수의 이야기임을 밝히며 이별을 경험하면서도 ‘가르쳐야 하는’ 처지에 대해 말한다. 정수는 슬기에게 할머니가 ‘이사 간 짝꿍’보다도 얼마나 더 멀리에 가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그들 앞에 부닥치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나서며 슬기로 하여금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별과 죽음이 우리에게 때때로 예고 없이 찾아올 때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해결하기 버거운 상황을 넘겨내는 방식을 정수는 슬기에게 알려준다.

 이처럼 <오촌>은 영화를 보는 이의 개인적인 경험을 상기시키고는 그것을 다 커버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더니, 이윽고는 특유의 세심함으로 이러한 상실을 ‘당신’과 ‘우리’가 겪는 보편으로써의 감각으로 확장시킨다. 슬기의 서글픈 눈물에서 정수의 곤란한 얼굴로, 나아가 어른들의 무기력하고 거칠어진 낯으로 피사체가 바뀌어갈 때에 우리들은 보편적인 상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 그가 남긴 무수한 흔적들, 그리고 여전히 이별은 어렵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무정하고도 경이로운 사실. <오촌>은 인생의 어느 특정한 시간 혹은 단계를 짧은 러닝타임 안에 꼭꼭 눌러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유,렉카> 리뷰

최은규



 

 그 옛날 한 드라마 제목처럼, 사랑한다는 말 앞에 붙는 미안하다는 말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남자, 수빈 (홍석우) 은 여자, 진아 (공현지) 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말한다. 또는 그럴 상황에 처한다. 용기 내 함께했던 첫 식사에서 호기롭게 긁은 카드가 잔액부족일 때, 좋은 곳 데려가주고 싶어 오랜만에 끌고 나왔다는 자동차가 도로에서 퍼져 (!) 버렸을 때, 심지어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 - 밥값도 못 냈던 상황이니 - 그 수리비마저 일체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말하는 여자의 모습을 볼 때, 남자는 한없이 미안해한다. 영화의 시간은 여름인데, 가눌 길 없는 미안함이 마치 한겨울 내린 눈처럼 제때 녹지도 못하고 겹겹이 쌓여간다.

 아쉬운 것은 남자의 그런 마음이 늘 여자에게 닿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남자의 모습이 오히려 답답하고 실망스럽다. 좋아하는 만큼 해주고픈 마음을 우리는 물론 사랑이라 부르지만, 나와 상대의 여건과 상황이 항상 1:1로 정확히 대응하진 않기에 이 사랑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전쟁 같은 사랑을 매순간 겪어내는 두 남녀의 치열함과는 별개로, 한적한 휴일의 시골길과 노을진 강변을 여유로이 산책하는 카메라는 느긋한 자세로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사람들을, 아니 이 사랑들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는 똑같이 그저 느긋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 그뿐이다.

 <유, 렉카>는 퍼져버린 남자와 그의 자동차를 뒤에 달아서 끌고 갔던 ‘렉카’ 를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고, 옛 그리스 철학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낸 뒤 기쁨에 겨워 내질렀다는 그 유명한 고대의 감탄사를 뜻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가히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사랑이라는 어려운 난제 앞에서, 느리고 서툴지만 점점 자신들만의 답을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이 영화에는 담겨 있다. 그 어떤 하루보다 길게 느껴졌을, 고단했던 하루의 뒤에 이제 또 어떤 하루하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마 영화 속 그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사의 기술> 리뷰

임아현




 대구의 검은 섬, 50여년 역사의 동인시영아파트는 대구광역시 최초의 민간분양 공동주택으로 불리며 오랜시간 대구 중구 한켠에 자리해온 공간이다. 50년 만의 재개발이 결정되던 2020년 대구에 코로나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이 곳에 살던 오래된 주민들은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곳은 1층부터 4층까지 계단형이 아닌 경사로의 나선형 구조로 이루어진 곳인데, 거동에 불편함을 겪는 고령의 어르신분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나는 살아온 공간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는 지역의 역사와 지리적인 환경을 담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같이 때 묻고 같이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집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의미있는 아파트인 만큼 이 곳에서는 지역 주민과의 다양한 지역 사업과 기록 사업이 이루어졌고 그 흔적도 아파트 곳곳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동인시영아파트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홍두리 어르신과의 대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는 전후 시절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고 점방 하나 다락 하나를 시작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간다.

 ‘이사의 기술’은 사라져가는 아파트를 다루는 다른 영화처럼 오래된 향수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대신 구술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나열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초반의 진행은 장윤미 감독의 <콘크리트의 불안> 의 연출과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을 다룬 라야 감독의 <집의 시간들> 내러티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건조하게 아파트의 적막한 공간을 들여다보다가 등장하는 과거의 이야기들. 그림과 옛날 사진을 통해 우리는 시절을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가 된다. 그리고는 7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잔인한 현실의 세계로 인도한다. 70년을 한 곳에서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는 한 인간에게 필요한 이사의 기술은 무엇인가. 내 몸 하나 누일 곳 찾기 힘든 곳에서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동인아파트를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느끼는 처연함은 대구라는 지역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감정이기도 하겠다. 한 인간이 살아온 주변을 찬찬히 살피면서 대구가 변화해온 지점을 살펴보기도 하며 새롭게 놓여진 세련된 아파트의 모습을 비추며 1년 뒤로 향한다. 그리고 세상이 알려준 것은, 그렇게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은 이사의 기술이 아니라 돈의 기술. 우리는 계속 미래로 향하고 있지만 밀려나는 사람들과 사라져가는 장소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일방통행> 리뷰

금동현




 유난히 운이 안 좋은 하루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인물을 궁지에 몰아넣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라… 같은 격언을 나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일방통행〉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방통행〉의 주인공 여울은 거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되짚어보자. 어느 날 대학 동기 언니가 갑자기 죽고, 결혼 날짜까지 잡은 남자친구는 친한 동생과 자고 잠적을 하고, 동기 언니의 장례식을 빌미로 전 남자친구까지 여울에게 찾아온다.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인데. 여울은 거의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다. 언니의 장례식에 갈 거냐는 친구들의 물음은 유보하고, 남자친구의 집에 찾아는 가보지만 예비 시어머니에게―남자친구의 일을 아마도 덮으려고 먼저 전화했던―전화를 걸어 깽판을 치지도 않고, 결혼반지를 찾으러 오라는 판매원의 전화도 그냥 끊어버린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여울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변명을 늘어놓는 친한 동생의 말에 나도 알고 있다고 대꾸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일방통행을 하는 차선임에도 반대편에서 온 차가 외려 경적을 울리는 상황에서도. 여울은 가만히 ‘일방통행’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에 계속 반복되는 진동과 전자음이다. 제도는 우리 삶의 우연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제도가 상당한 발전을 이룬 사회에서, 우리는 삶의 안정성을 흔드는 사건을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적은 와중에도, 안정성을 흔드는 사건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것은 핸드폰의 진동이나 전자음으로 전달된다. 전화가 올 때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세계와 연결되곤 한다.

 물론 이런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에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잠깐 나간 사이에 스킨십을 하던 남자친구와 친한 동생의 장면이나, 핸드폰에서 ‘조예은’을 검색하는 도중에 (마치 보란 듯) 연이어 오는 메시지는 영화를 작위적이고 설명적이게 만든다. 술을 취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빈 술병 인서트를 넣은 것처럼. 나는 이런 투명함보다도 〈일방통행〉의 불투명함이 더 좋았다. 가령 여울은 예은의 장례식장에 왜 가고 싶지 않아하는 걸까? 여울은 처음 전화 온 친구의 전화번호를 왜 저장하고 있지 않았을까? 손님이 오라는 모임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불투명성이 진정 여울을 사람으로 보게 한다. 




*본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네트워크 활성화 지원사업>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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